며칠 전 교장실에서 언론사에 보낼 원고정리도 하고 우리 학교 특별사업인 ‘학교장과 함께하는 아침 영어교실’ 시간에 사용할 학습 자료를 준비하느라 새벽녘이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잠이든지 얼마 안 되어 창밖에서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도둑이라도 들었나 싶어 밖으로 나갔다. “누구야!” 하는 소리에 검은 물체들이 교문 쪽으로 도망을 갔다. 우리 아이들이었다.
이 녀석들이 새벽녘에 학교에 오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부모들이 인근 유원지에서 밤샘 장사를 하거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보살피는 아이들이다. 집에 가도 마땅히 할 일도 없고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도 없다 보니 처지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다가 새벽녘이 되면 학교에 온다.
우리 학교에는 이처럼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많다. 특히 도심학교에서 전학을 온 학생들 가운데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온 경우가 적지 않다.
운동을 하다가 허리를 다친 학생, 왕따를 당하여 심리적 치료가 필요한 학생, 우울증이나 자폐증이 있어 항상 불안한 학생, 성적 문제로 자해를 경험한 학생, 가정이 빈곤하여 식사를 거르는 학생, 그리고 가정해체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이다.
이곳에서 성장한 학생들이라고 해서 환경이 썩 좋은 것도 아니다. 부모님이 도시로 돈벌이하러 떠났거나 인근 음식점이나 공항공사에서 일용직으로 근무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우리 학생 중 꽤 많은 아이는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부모로부터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다 보니 공부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공부를 강요할 수는 없다. 공부보다도 일탈하지 않고 꼬박꼬박 학교에 나오는 것이 그저 고맙기 때문이다.
학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기능’과 아이들을 관리하고 돌봐주는 ‘보호의 기능’이다. 학교급이 낮고 저학년일수록, 또 도시보다는 시골학교일수록 교육보다는 보호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 학교처럼 농어촌 학교는 ‘학력’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도록 학생들을 ‘보호해주는 기능’이 더 중요하다.
새벽녘에 다른 곳을 방황하지 않고 ‘그래도 학교로 오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사제지간에 스스럼없이 정을 나누고 선배와 후배가 공을 차며 서로 땀을 닦아 주는 모습을 보면서 전교생이 60여명뿐인 이 작은 학교를 떠나지 않고 5년간 머무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김정렬 인천 용유중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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