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나이 50, 60을 넘기게 되면 사는 유형이 다섯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첫 번째는 사는 것 자체가 좋아서,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타입이다. 가까운 주변에는 그런 정도의 경지에 이른 분들은 없고, 대학 선배인 박모 선배님은 건강·가족·재정·취미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도 그렇게 자부하고 옆에서 보아도 언제나 미소가 가득하다. 얼굴에 ‘나는 행복하다’라고 쓰여있다.
주변에 있는 분들 칭찬도 잘하고 배려심도 빼어나다. 특별히 걱정하는 말을 들어 본 적도 없다. ‘무위자연(無爲自然)’형 이랄까.
두 번째 유형은 행복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타입이다. 주변의 친구들, 특별한 병 없고 월급쟁이를 평생 한 이들이 대개 이 범주에 속하는 게 아닌지. 무엇보다 이 타입은 바쁘다. 목표를 정하여 운동도 하고 영화 연극 음악회 등을 찾아다닌다. 지역문화센터의 프로그램에도 정통하다.
세 번째 유형은 이제까지 잘 살아왔고, 앞으로 큰 변화나 발전에 대한 기대도 없어 ‘될 대로’, ‘이 대로’ 안주하는 타입이다. 오늘이 어제와 다르지 않음에 크게 실망도 않고 내일에 대하여 큰 기대도 않는 편안한 삶을 구가 한다.
옆에서 보기엔 다소 지루하고 따분할 것 같은 그런 삶을 별 탈 없이 오래 살아온 분들이다. 지난 연말 송년 모임에서 가장 머리에 남았던 건배사는 ‘별일’하고 선창 하면, ‘없기를’하고 모두가 따라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정도의 차이일 뿐 다 좋다. 많은 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타입인지 물어보면 대개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중간이거나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중간인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네 번째 유형은 끊임없이 남 탓하는 타입이다. 조상이나 부모 탓, 배우자 탓, 자식 탓, 직장 탓, 친구 탓 등 끊임없이 비난하고 불평하고 비판한다. 이런 타입의 입에서 좋은 소리, 남을 칭찬하거나 배려, 격려하는 소리 들어보기 어렵다.
마지막 다섯 번째도 힘들고 고달픈 유형이다. 남이 아니라 자신을 끊임없이 자조하고 자학하는 타입이다. 매사에 부정적이다. 뜻대로 안 되면 ‘거 봐라. 운 없고 재수 없고 ‘빽’도 없는 내가 바라기 뭘 바라’라 하거나, ‘별수 없지’가 입에 붙었다.
혹시 뭐 좋은 일이 생겨도 이를 좋은 쪽으로 받아들이거나 즐기질 못한다. 항상 불안하다. 좋아도 나빠도 어차피 인생은 시간의 합이고 자신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가는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영향을 미친다. ‘관계’가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강정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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