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일보-칼럼]“올해도 행복하세요”

[아침을 열면서]

여느해 처럼 올 해 연초에도 연하장이 책상 위에 수북하다. ‘건강과 가족의 화평, 행복을 기원한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또 있다. ‘하시는 일의 성취를 바란다’는 고마운 말씀이다. 이런 내용들이 이메일이며 전화메시지에 까지 담겨 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 어떤 사람은 돈만 많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죽자사자 공부를 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무슨 짓을 해서든 돈만 많으면, 자기 사업을 할 경우 공부 잘 한 하수인을 부릴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골머리 아프게 공부를 하냐는 것이다.

 

오래 전 일이다. 옆집에 트럭으로 물건을 떼어 장사를 하는 이웃이 있었는데 제법 쏠쏠하게 벌이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는 내가 대학에 가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는 것을 보고 자기는 자식 대학에 보낼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사람마다 다른 행복의 기준

대학을 나와봐야 기껏 월급쟁이 노릇이나 하는데 뭣 때문에 그 고생을 하냐는 것이다. 자기 자식도 일찌감치 운전을 가르치고 장사눈을 뜨게 해서 역시 차떼기 장사를 시키겠다고 했다. 그것이 나쁘고 잘못된 생각은 물론 아니다. 그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사는 행복한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과 잣대가 다르기 때문에 그의 행복이 약간 초라해(?) 보일 뿐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돈 보다는 명예나 권력을 행복의 가치 기준으로 여긴다. 이른바 ‘사’자 직업을 갖고 남들에게 대우를 받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어떤 부모는 자기 자식의 적성이나 취향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의사나 판·검·변호사가 되기를 바란다. 돈도 많이 벌고 남들로부터 대우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치가가 되고 싶어 안달을 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국회의원이 되고 장관이 되면 사돈의 팔촌까지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가 목에 힘을 주고다닌다. 남 위에서 군림하고 권력을 ‘조자룡이 헌칼 쓰듯’ 휘두르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부류이다.

 

올해는 인생역전을 꿈꾸는 많은 이들이 권좌에 오르기 위해 ‘몸부림치는’ 선거의 해다.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뽑는 큰일이 치러지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남앞에 나서고 남 위에 오르고 싶어하는 이들이 표를 얻기 위해 공약으로 부르짖는 구호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정치를 잘해서 경제를 안정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종류에 상관 없이 일자리를 만들어 돈만 벌게 하면 국민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요즘같이 학교폭력이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때 학교 문제만 해결해주면 국민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실 행복은 여러가지 이유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좋은 공연을 보았을때, 좋은 책을 읽었을때, 뜻이 맞는 사람과 의미있는 대화로 공감을 얻었을 때, 심지어 맘에 드는 옷이나 치장거리를 샀을 때도 우리는 행복을 맛볼 수 있다. 

허황된 욕심 버릴때 행복이 온다

예전 선비들은 행복을 청복(淸福)과 탁복(濁福)으로 구분했다. 탁복은 세속적인 재물이나 권력 욕망을 채웠을 때 얻게 되는 것이고, 청복은 자연에서 얻는 아름다운 감동, 근검한 삶에서 맛보는 만족을 의미한다. 행복의 기대치가 높아지면 그것은 이상(理想)이 되고 만다 .

 

그리고 대개 이상은 이루기 어려워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한다. 이상은 손뻗어 닫기 어려운 곳에 있는 꿈이기 때문이다.

 

세월이 어렵다. 그러나 이런 시절에도 행복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허황한 욕심은 버리는 것이다. 이룰 수 있는 소박한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룰 때 행복도 얻고 삶의 격조도 높일 수 있는 것 아닌가.

 

신효섭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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