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法

옛날 한 소년이 어머니 약값을 하기 위하여 집에서 키우고 있던 닭 5마리를 시장에 팔러 나왔다. 어린 소년을 우습게 본 고약한 닭장수가 소년에게 곱절되는 값에 팔아 줄 테니 자신에게 닭을 맡기라고 하여 소년은 닭 5마리를 닭장수에게 맡겼다. 그러자, 닭장수는 날름 그 닭들을 자신의 닭장 속에 집어넣어 버린 후 내가 언제 닭을 받았느냐며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이에 소년은 고을 사또를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였고, 영민한 고을 사또는 소년에게 닭장수의 닭장에서 그 소유의 닭을 찾아내라고 한 후 닭장수에게 아침에 무엇을 먹였는지 물었다. 그러자, 닭장수는 수수와 보리를 먹였다고 하였고, 소년은 집에 아무것도 줄 것이 없어 겨우 조 한 줌을 주었다고 대답을 하였다. 사또는 소년이 찾아낸 닭 중에 1마리의 배를 가르게 한 후 정녕 그 속에서 조가 나온 것을 보고 닭 5마리를 되찾아 소년에게 주고 닭장수에게는 10배의 손해배상금을 물게 하였다고 한다.

 

이 명판결 사건을 이 시대로 가져와 보자. 소년은 사기죄로 닭장수를 형사고소할 수 있고, 닭을 반환하라는 민사소송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소년이 승소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안타깝게도 제로에 가깝다. 그 이유는 형사재판이든 민사재판이든 청구했다고 그날 당장 진행되지 않아 증거확보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날 진행했다고 하더라도 닭의 뱃속에 무엇이 있는지 감정하려면 감정절차나 영장청구를 하여야 하는데, 그런 절차를 밟고 나면 이미 닭의 뱃속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날 닭 1마리의 배에서 조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닭장수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4마리의 닭을 조사하지 않고 바로 소년의 닭이라고 인정받기도 어렵다.

 

이러한 결과는 현대 사법체계가 절차적 정당성과 증거재판주의, 변론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사법제도는 현대 문명국가의 일반적인 제도이고 그 최종 판단을 하는 법관이라는 직의 무거움에 대하여는 여러 말이 필요 없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일부 법관들이 법관의 직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법관이 법제도를 무시하고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그 법관을 신뢰하고 존경하고 승복할 수 있겠는가. 깃털보다 가벼운 스마트세상에 대한 피로감이 깊어간다.

 

김정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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