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은 주민들 사랑으로 살지요”

중학교 시절, 신문을 배달했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서울의 산동네로 들어간 우리 가족은 하루 하루를 버텨내는 것에 그저 감사하고 행복할 따름이었다.

 

신문을 돌리면서 힘든 것은 몸이 아니었다. 누가 날 알아볼까봐 걱정하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힘들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연신 주변을 살펴야 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고, 지금의 나는 수원 권선구의 국회의원이 돼 신문이 아닌 의정보고서를 배달한다. 그때는 누가 알아볼까봐 두려웠고, 알아보면 속상했는데, 지금은 제발 날 알아봐주기를 바라고, 알아봐주면 그렇게 고맙고 행복할 수가 없다.

 

지역구를 다니다보면, 옛날 어릴 적 내가 살던 그 동네에 세탁소집 아저씨, 문방구 아저씨를 만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미경아, 엄마 오시라고 해, 수제비 했으니까 같이 먹자구” 하던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이제 그 시절 그 시간은 지나가고 다시는 내곁으로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 시절의 내 감정과 이웃들의 표정, 목소리는 더욱더 선명해진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모를까봐 가르쳐주는 선생님처럼 분명해진다.

 

톨스토이가 쓴 책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다시 꺼내 읽으며 나 자신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되물어 본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검사로 살다가 정치인으로 사는 지금 난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고민하는지 속내를 털어놓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행사장에서도 그렇고, 의정보고서를 들고 거리로 나가도 그렇고, 그럴 때면 내게 등을 돌리는 분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나하고 악수하지 않으려고 등을 돌리고 서 있는 그 분을 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 본 분인데, 잘 모르는 분인데…’

 

분명 처음 본 사람인데 불쑥 내 외모를 문제삼는 경우도 있다. “아니 화장 좀 하고 다니지.” “ 주름이 왜 이렇게 많아요. 관리도 안 받나.” “화면보다 이쁘지 않네.” “왜 이렇게 늙었어요? 피부과 좀 다니고 그러지.” “흰머리가 많네요.” “살이 쩠네요, 팔자가 좋은가보네.” “말랐네, 그러게 그냥 검사나 하지 그랬어요.”…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게 가해지는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컨대 속상할 때가 있다. 물론 내가 속한 정당을 지지하거나 나를 인정해주고, 지지하는 분들로부터 환호를 받고 성원을 받는 경우도 많다. 그 힘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더 열심히 지역구를 챙기고, 꼼꼼히 법률안 심사를 하고, 예산심의를 하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움직인다.

 

처음엔 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 때문에 ‘정치가 무서운거다’ 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점차로 깨닫게 된다. ‘우리 국민들은 너무 착해서, 마음을 감추지 못해서, 얼굴을 돌린다’는 것을. 악수하면 욕하지도 못하고, 악수하면 모질어지지도 못하니까 그런 거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그런 분이셨다.

 

처음 보자마자 대놓고 기분 나쁘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에 대해서는 세월이 가면 이해할 거라고 스스로 위안해 본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자인 경우는 남자와 달리 외모관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도 되고, 스스로 자책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이든 가슴이 아려올 때가 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고 정답을 말한 톨스토이에게 묻고 싶다. “국회의원은 무엇으로 살까요?” 라고. 역시, 톨스토이는 정답을 말해준다.

 

“주민들의 사랑으로 살아가지요.”

 

정미경 국회의원(한·수원 권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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