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질문을 받으면 참 난처한데, 얼마 전에 또 받았습니다. “변호사님, 내가 아는 A 씨가 000법률사무소 사무장으로부터 판사와 ‘라인’이 있는 변호사를 선임해야 한다며, 지금 선임한 연수원 출신 변호사로는 약해서 안 된다고 한다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오늘 아침에 광주지방법원 모 판사의 기사를 보니까 더 불안하답니다”라고.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지만, 아직 이것이 영업 사무장들의 영업방식이고, 의뢰인들이 변호사를 선임하는 기준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좋은(?) 변호사를 만나고 싶은 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위와 같은 변호사의 선정 기준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형사재판은 형량을 정함에 판사의 재량의 폭이 커서 좀 다른 측면이 있긴 하지만, 민사재판에 있어서는 주장에 부합하는 증거가 있으면 승소하는 것이고, 없으면 패소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부족한 증거를 변호사와 판사의 친분관계로 대체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사실을 말해 주어도 들으시는 분들은 저의 말을 반신반의하는 것 같습니다. 그분들은 변호사가 판사와 잘 알면 어떤 유리한 점이 있다 생각하는 것일까요?
어느 봄날 오후, 어떤 분이 제가 00판사와 친구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습니다. 누구한테 소개를 받았느냐고 물어도 그건 절대 말할 수 없다며 고집을 피워 일단 사건의 내용을 들어 보았습니다. 법률적 쟁점도 많고 승소 여부도 불투명한 골치 아픈 사건이었습니다. 그럼에도, 00판사와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절대 다른 곳은 안가겠다고 고집을 피워 ‘판사가 친구라고 해서 소송에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패소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다짐을 받은 후 수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으로부터 받은 다짐이 무용지물임을 깨닫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수시로 전화해서 ‘요즘은 판사님과 전화를 하시느냐, 자주 만나느냐, 판사를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말 좀 해 봤느냐, 선고결과가 어떻게 날 것 같으냐, 결과에 대해 넌지시 무슨 말이 없었냐’ 등등. 아무리 친구 사이라도 공적 임무를 맡은 판사에게 변호사로서 지켜야 할 예의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쨌든 이 사건은 친구 판사가 선고기일만 지정해 놓은 채 다른 법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다른 판사가 와서 사건을 종결지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요? 친구 판사가 조정하고자 했던 금액보다 많은 금액으로 조정되었습니다. 그분이 소송의 결과는 판사와 변호사와의 친분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정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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