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짓도 멍석 깔면 안해’

어린 아이에게 낯선 물건은 신명나는 탐구의 대상이다. 아이들은 모두가 과학자요, 탐험가다. 새로운 것을 보거나 듣는 순간부터 즉시 상상을 시작하고 자기식으로 해석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생각을 표현한다. 아이들은 배움 그 자체를 즐긴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배움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흥미나 즐거움과 같은 내적 충족감이 인간 행동의 동기가 된다고 설명하는 이론이 ‘내적 동기이론’이다. 이것은 보상이나 처벌과 같은 외적인 수단에 의해 행동을 강화할 수 있다는 행동주의 이론과 배치되는 것으로, 인간은 어떠한 자극에 대하여 자발적으로 반응하는 능동적 존재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구한말 의병들의 행위 동기는 보상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나라를 빼앗긴 데 대한 부끄러움과 분노와 같은 내적인 동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내적 동기는 그에 대한 보상이 외부로부터 주어졌을 때 오히려 억제된다고 한다.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주면 안 한다’는 우리 속담이 바로 그러한 현상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기쁨에 넘쳤던 아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배움에 방해를 받기 시작한다. 배운 것에 대해 시험을 보고, 점수에 따라 등수를 매기면서 배움은 즐거움이 아니라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로 바뀐다. 우리가 소설 어린 왕자나 데미안을 읽을 때에 독서삼매(讀書三昧)에 빠지게 되는 것은 읽는 그 자체가 즐겁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상상과 모험, 생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해석에 심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시험을 본다는 것을 전제로 이 책들을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 문제를 많이 틀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한 편에 자리할 것이다. 하던 짓도 멍석을 깔아주면 안 하게 되는 일이 여기에서도 발생한다.

 

이제 학교 수업과 평가가 바뀌어야 한다.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한 지름길은 스스로 학습에 흥미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학습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활동할 기회를 많이 가지고, 학생들이 주어진 과제를 스스로 해 내는 경험이 많을수록 학습 효과는 높아진다. 평가 역시 서열을 매기기 위한 평가가 아니라(석차가 적힌 성적표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엔 없다.) 배울 것을 배웠는지, 어제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수업과 평가는 우리 아이들 누구나 내부에 지닌 잠자는 거인을 깨우기 위해 어디를, 어떻게 건드려주어야 하는지를 찾는 일이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 교육의 중심에 인간을 돌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김국회 수원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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