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용어 중 하나는 ‘복지’일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세인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복지에 관한 이슈는 아동들의 밥그릇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무상급식 논쟁에서부터 온 나라를 들썩이고 있는 영화 ‘도가니’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당 간에도 복지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방식을 두고 ‘선택적 복지’인가 ‘보편적 복지’인가 하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선택적 복지, 보편적 복지 논쟁처럼 요란하지는 않지만, 문화복지를 둘러싼 논란도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채 여전히 논쟁중이다. 문화복지라는 용어는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OECD 가입에 즈음하여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정책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조어다. 글자 그대로 쉽게 풀어 보면 사람들의 문화적 욕구를 복지적 관점에서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화적 욕구인지, 그 욕구를 어떻게 제공하고 충족시킬 것인지 등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문화복지라는 명분하에 설익은 정책이 만들어지고, 부족한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두고 문화나 복지 분야 관계자 간의 갈등이 빚어지면서 문화복지는 자기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복지에 대한 현장 활동가의 인식은 다양하다. 사회적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서비스의 한 종류로 인식하기도 하며, 모든 국민의 문화적 품격을 높이려는 국가전략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공동체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상호소통과 시민성의 덕목을 일깨우는 계기로서 인식하기도 하며, 산업화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문화복지는 문화소비자로서 뿐만 아니라 문화생산자로서 기틀을 만드는 계기로서 바라보기도 한다.
문화복지라는 용어가 등장한 지 약 15년이 됐다. 문화복지가 처음 등장하던 시기만 해도 문화예술은 전문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으나, 이제는 새로 짓는 웬만한 아파트에는 동아리밴드를 위한 전용공간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우리네 생활 속으로 문화예술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복지 영역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정신적인 삶을 위한 인문학 교육 프로그램인 ‘희망의 인문학’이나 빈곤가정 자녀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와 같은 해외 사례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문화복지의 자기정체성은 여전히 불분명한데, 사회적 취약계층이 됐든 모든 국민이 됐든 간에 이들의 문화적 욕구를 수용하고 실현시키고자 하는 시도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 대해 이제는 차근차근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경기문화재단의 ‘화성에서 온 문화, 금성에서 온 복지’ 강의시리즈를 눈여겨볼 만한 하다. 우선, 주제나 강의 내용들이 여러 분야에서 운위되는 ‘문화복지’ 내용들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소 성긴 그물망이긴 하지만, 문화복지를 둘러싼 다양한 인식을 한 자리에서 담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할 만하다.
이번 강의시리즈는 각 분야에서 현장 경험을 가진 관계자들 간의 광범위한 소통을 끌어내는 계기여서 기대된다. 문화복지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래 현장은 물론 학계에서도 지난 15년 간 문화 분야나 복지 분야 관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실천적 고민을 하는 자리는 매우 부족했다. 간혹 두 영역의 관계자들이 마주 하더라도 생활환경이나 사고방식, 가치체계 등에 있어 커다란 인식차를 드러내곤 했다.
문화와 복지는 그 내용과 형식이 어떠하던 간에 우리 시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들이다. 문화복지는 그 출발이 어떠했던 간에 건강한 삶을 유지하게 만드는 영양분이다. 마치 남한강과 북한강이 두물머리에서 만나 한강으로 흐르듯, 다른 발원지에서 시작되었지만 문화와 복지는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만나 이 시대의 욕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종열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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