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달 18일까지 의약품의 슈퍼판매를 가능하게 하는 약사법 개정안의 입법예고를 끝냈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속전속결로 통과시킬 계획을 갖고 있다. 해열진통제나 종합감기약, 종합소화제 등을 ‘약국외 판매 의약품’으로 변경해 슈퍼에서 판매하도록 하겠다는 것인데, 국민의 한사람이자 국회의원으로서 의료접근권의 문제를 경제논리로 해결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위험한 발상에 심히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동네약국 죽여 대기업 배불리기
심야시간이나 휴일에 비상약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언뜻 국민의 의료 접근권이 확대된다고 환영할지도 모르지만 실상을 보면 도시중산층인 동네약국을 죽여 대기업을 살찌우는 또 하나의 MB표 親대기업정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약품 판매장소는 심야나 공휴일에 판매가 가능해야하고, 의약품의 이력을 추적할 수 있으며, 위해의약품 발생 시 신속한 회수가 가능한 곳에서만 허용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영세한 동네슈퍼는 빼고 약국 수입의 상당액을 대형마트나 편의점으로 이전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소유한 대형마트야 판매이익이 대기업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소규모 점주들이 경영하는 24시간 편의점은 좀 다르지 않겠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으나 편의점 점주와 체인을 운영하는 대기업간의 불공정 계약관행을 보면 당연히 판매수익 상당부분은 마트와 편의점 체인을 관리하는 대기업으로 돌아갈 것이 명약관화 하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약사법 개정은 도시 중산층인 동네약국을 죽여서 대기업의 배를 불리는 것으로 4대강사업, 법인세 감면 등 일련의 MB표 親재벌 親대기업 정책시리즈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 정부가 슈퍼판매를 추진하려고 하는 진통제나 감기약, 소화제는 1~2알이면 아픈 데에 유효하지만 과다 복용할 경우 간독성이나 환각 등 일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복약지도와 함께 판매장소와 대상을 제한하는 등 관리감독 강화로 약물오남용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다고 설파하고 있지만 이는 현실성 없는 주장이다. 이미 약이 팔린 후에는 불량의약품, 유효기간 문제, 부작용 발생 등은 현실적으로 정부에서 통제하고 감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은 OECD 평균의 세배, 한국의 9배가 넘는 대표적 약물오남용사고 발생국이다. 국민건강을 보호해야할 정부가 이런 약물오남용 사례가 넘치는 불량국가를 따라하겠다는 것은 위해환경 조장으로 국민건강을 해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서민을 위한 응급의료체계 개선부터 서둘러야
정부는 약사법 개정에 앞서 서민들을 위해 심야나 휴일의 취약한 의료서비스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그동안 논의되었던 공공 의료 확대의 여러 방안들 등 논의 가능한 모든 방안들을 가지고 충분히 재검토 해야한다. 유명무실해진 당번약국제의 활성화나 보건소 24시간 운영, 보건약국 설립, 동네병원 24시간 운영 확대 지원 등 의료체계 범주 내에서 심야나 휴일에 의료접근권 확대를 위한 방안들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복지부는 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 일본의 약품오남용 사례를 들어 굳건히 버텨왔지만, 대통령의 버럭 한마디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장을 바꿔 약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민의 건강복지를 책임진 복지부의 조변석개(朝變夕改)가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의약품 문제와 소외된 서민들을 위한 응급의료체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아울러 복지부는 청와대와 기재부, 방통위 등 힘있는 기관들의 눈치 보기를 당장 그만두고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최고의 행정기관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주기를 바란다. ‘동네 약국 말살하는 親재벌 親대기업 정책’의 중단을 엄밀히 촉구한다. 최재성 국회의원(민·남양주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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