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이란 말을 한번 언급하고 싶어졌습니다. 사회문화적인 점도 있겠지만 의학적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통상 아이가 태어나 100일이 되면 떡을 만들어 친척과 이웃에 돌리며 기쁨을 나누곤 하지요. 100일 동안 죽지 않고 버텨줘서 축하한다는 의미가 있다지만, 이는 과거의 사회문화적인 삶을 열등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로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옛날 선조의 의식행사(백일축하)가 그렇게 치졸하지 않았으며 더 격조 있고 수준 높은 그 무언가가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한의사로서 산모 진료를 할 때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여성 대부분은 산후풍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후 몸조리를 잘못해서 발생하는 질환으로, 산모가 허약한 틈을 타 바람을 맞아 생기는 병입니다.
물론 서양의학에선 이 의견에 대해 묵살하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니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퍽 난감하더군요.
‘바람을 맞는다’ 함은 결국 우리가 걷거나 뛸 때 바람이 우리를 때리는 이치와 같아서 대기권에서는 운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공기 중을 헤엄친다고 보면 되겠지요.
이렇게 산후 허약한 틈에 바람을 맞으면 이런 병이 옵니다. 경험적으로 남아는 4주 여자 아이는 8주 정도의 절대 안정 기간이 필요하고, 산모는 가벼운 운동을 하고 100일이 지나면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기간이라고 이해하면 백일의 의미가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백일은 여성의 몸이 일상생활로 복귀하는 시점으로 모자보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숫자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숫자 속에 의미를 숨겨두는 아주 차원 높은 문화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일은 여성이 다시 사회적으로 복귀하는 시점으로 축하받아야 합니다. 부성에 비해 섬세하고 민감한 모성을 보호하는 것은 역차별이 아니고 출발점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요즘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좀처럼 듣기 힘듭니다. 간혹 거리를 걷다가 만삭의 산모를 보노라면 매우 반갑고 예뻐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출산율이 저조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입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사회 경제적인 문제를 논의의 선상에 올려 갑론을박해야만 합니다. 그보다도 먼저 임신과 관련된 문화적인 가치 정립과 아울러 모자보건에 대한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
역사가 오래되고 전통이 보존된 나라는 오래된 과거의 지혜를 현대적으로 응용할만한 훌륭한 유산들이 많습니다. 정책적으로 입안되고 국민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기가 쉬운 장점도 있습니다.
출산하기 좋은 나라!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의 시작은 문화에서 시작합니다.
정경진 경기도한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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