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는 천변만화(千變萬化)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번화한 도시인가 하면 한적한 전원과 험준한 산령이고, 내륙인가 하면 역동적 서해바다와 만을 끌어안고 있다. 전통과 현대성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와 긴장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 다양성 속에서 경기도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경기도와 한반도의 숙명적 관계를 볼 필요가 있다.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처음 설치된 경기(京畿)는 벼슬아치들에게 식읍으로 주던 도성 주변의 행정구역을 일컫는 말로 천 년간 한반도를 지배한 문화권력을 형성해 왔다.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도 한강하류의 경기도 일대를 지배하는 세력이 결국 한반도의 운명을 지배했다. 백제(1세기), 고구려(5세기)에게 있었던 한강유역의 지배권은 6세기 들어 신라에게 넘어왔으며, 신라는 중국과 직항로를 개척하여 한반도 통일의 계기를 만들었던 것.
경기도는 찬란한 사상, 물산의 고장임과 동시에 왕조의 명운과 한반도의 향방이 걸린 운명적 싸움터이기도 하다. 파주의 칠중성, 오두산성 등 삼국시대 산성들, 기호유교, 당나라와 문물교류의 관문이었던 화성 남양의 당성, 청태종의 20만 대군과 대치를 벌인 남한산성, 실학사상의 정수인 수원 화성 등이 그 번창했던 문명과 파란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근대 개화기 한반도가 열강의 각축장이 되면서 경기도는 다시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대륙진출을 꿈꾸던 일본이 청나라 수군과 첫 전투를 벌여 승리를 이끈 곳이 안산시 풍도 앞바다이며, 평택 등지도 청일간 전화에 휩싸이게 되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토인비의 말처럼 한반도의 역동적 변화와 관련된 경기도의 역할은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20세기 중반 미국의 지정학자 존 스파이크먼(J. Spykman)은 ‘완충지대를 지배하는 자가 유라시아를 지배하며,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보았다. 완충지대(Rimland)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러시아의 대륙세력과 미국·일본의 해양세력간 충돌 과정에서 일어난 국토의 분단은 이 추상적 이론의 교본처럼 보인다.
대한민국이 전쟁의 참화와 분단의 긴장을 딛고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국가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경기도는 주거, 근교농업, 세계적 첨단산업 등의 최전선으로, 여가와 휴식터로서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경기도의 역할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김유신의 삼국통일, 왕건의 삼한통일 이후 경기도는 다시 한 번 통일 대업을 이룬 한반도의 시발점이 되어야 할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글로벌 시대의 완충지대는 충돌의 땅이 아니라 선진 문명간 만남과 융합이 일어나 신문명과 창의의 용광로가 될 것이다. 그 중심에 경기도, 경기만, 3강 하구가 있다. 경기도는 한반도의 숙명을 품에 안은 땅이며, 한반도의 미래인 것이다.
이정훈 경기개발연구원 문화관광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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