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허허벌판 천지개벽 40년

새하얀 소금밭이 80년대 달러밭으로 유서 깊은 문화·예술·학문의 고장

지역적으로 자연의 혜택이 풍부했던 안산(安山)은 수천년 동안 대중국 진출로인 동시에 어염업(魚鹽業)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고을이다. 안산시 신길동과 시흥 능곡지구 등지에서 신석기시대 대규모 집자리가 발견된 사실이 이를 잘 뒷받침해주고 있다.

 

해양교역의 거점

고려시대 안산은 개경을 중심으로 중부 서해안지역인 충청도로 이어지는 도로의 중심지였으며 당시에도 소금은 국가재정을 위한 중요한 자원 가운데 하나였다.

 

문종의 탄생지인 동시에 덕종·정종의 외향(外鄕)인 안산은 교통로를 중심으로 서해안 지역의 고을들은 교통과 어염 등을 통한 부(富)의 집적이 계속됐으며 해안을 중심으로 교통과 어염의 생산권을 장악한 세력들이 정치권력과 함께 행사하며 문벌귀족으로 성장하는 등 경기도 중서부의 농·어업과 해상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성곡동의 잿머리 성황당은 안산이 고려시대 중국과의 해상교통 주요 거점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유적이며 이후 조선 초기까지 변동 없이 유지돼 왔다.

 

조선시대 안산은 서해 어장(漁場) 가운데 가장 좋은 곳으로 인정받아 궁중에 생선 등 해산물을 진상하는 사옹원이 직할하는 안산어소(安山漁所)가 있던 곳으로 현재 신길동에 옛터가 남아 있으며, 15세기 강남농법의 도입으로 언전(堰田)개발이 시작되면서 간척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초지동의 별망성은 섬에 세워진 관측용 초소였으나 인력을 동원해 육지화한 대표적 사례로 옛 안산 땅에는 간척 흔적들이 남아 있고 조선후기에는 어업과 염업 등은 물론 농업까지 발달해 풍요로운 고장으로 변모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학문과 예술이 싹트기 시작했다.

 

안산은 수도가 한양으로 천도된 조선시대 한양과의 거리가 반일정(半日程)으로 가까워져 어염산업의 발달로 인한 풍요로움은 병풍처럼 둘러싼 수리산과 서해바다 등지를 배경으로 수많은 그림과 시(詩)를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었다.

 

안산에서 소금을 굽는 집안에 태어난 최경(崔涇)은 어린 시절 바닷가 갯벌에 그림을 그리며 재능을 키워 궁중화원으로 발탁된 뒤 어진(御眞)을 잘 그려 4차례에 걸쳐 당상관에 제수됐으나 신분이 합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번번히 무산됐다.

 

조선후기 안산에 거주하던 진주 유씨의 사위였던 강세황은 원당골에 살면서부터 당대 화단에 새롭게 떠오른 진경산수나 풍속화, 남종화 등 회화의 현실감각과 사의(寫意)정신 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에 힘입어 대성한 작가가 바로 단원 김홍도다.

 

그는 18세기 후반부를 풍미하며 회화의 모든 영역을 두루 섭렵했고 타고난 예술가 자질과 자유자재 표현력 등으로 조선후기 회화를 집약했다. 진주 유씨 문중의 유경종(柳慶種)은 안산 일대의 넓은 사패지(賜牌地)와 어염권 등에 의해 축적된 자산으로 성호문하(星湖門下)와 안산에 모여든 문인 묵객들을 지원했다.

이로 인해 조선후기 학문의 큰 줄기인 성호실학과 문학·예술 등이 꽃피울 수 있었다.

호주 캔버라 벤치마킹 ‘임해전원 자족도시’ 건설

안산의 풍요로운 산업과 문화예술의 조화는 근대 산업화과정에서 침체됐으나 지난 1970년대 서울 근교에 신공업도시 건설의 적지로 선정되면서 새로운 공업도시로 태동하기에 이르렀다.

 

‘공원 속의 공장’, ‘세계적인 임해 전원도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건설된 반월공업단지는 이전의 공장만 건설하던 방식에서 탈피, 주택 및 배후 시설을 완비한 자족 도시로 계획됐다.

 

호주의 계획도시 캔버라를 모델로 한 계획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으며 국내 유일의 산업공원형 공업단지로 주거지역을 분리하기 위해 자연녹지 34%를 보유하고 중소기업 전문단지로 조성됐으며 협동화 사업단지로 운영돼 기업의 운영비 절감이 가능,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다.

 

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안산 인구는 급격히 늘어났고 이와 더불어 문화·예술 진흥도 병행됐으며, 수백년 동안 이어온 문화·예술 토양을 토대로 자생적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태동됐다.

 

공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문화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으로 산업문화라는 독특한 발상을 통해 새롭게 비상하려는 시도가 예술인아파트와 경기도미술관, 성호기념관 등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 안산 역사에 면면히 흐르는 문화예술의 토양이 빚어낸 필연이다.

 

첨단 부품·비즈니스·생태산업 중심지 도약

안산은 반월·시화공단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기업을 수준별·단계별 맞춤형 지원 체제 구축 등 선도 기업 위주의 글로벌 부품기업 육성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첨단부 품·소재 혁신센터 설치, 글로벌 복합 비즈니스센터 건립 등 연구개발능력 확충, 비즈니스 환경 개선, 수도권과 연계한 개방형 네트워크 구축 및 산·학·연 연계 프로그램 활성화 등도 추진되고 있다.

 

안산은 성호 이익 선생의 실학정신이 깃든 전통과 문화 등을 갖추고 있다.

 

디지털 혁명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구현할 수 있는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이 이미 우리의 삶 속에 내재해 있으며, 이같은 잠재력이 반월·시화공단의 활성화를 이끌고 있다.

 

안산은 문화예술 향유자의 층이 많이 두터워지고 있으며 문화·예술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기반을 다졌지만 계속 확충되고 있다.

 

문화시민으로서의 자질이 향상된 건 개인과 지역사회가 다같이 노력한 결과이다. 시민 90% 이상이 유입 인구로 구성돼 ‘우리’라는 정체성이 부족한 가운데 ‘우리 고향’안산 만들기운동도 민·관이 협력해 진행하고 있다. 서해안 시대를 맞아 각 분야에서 노력하는 문화·예술인들의 활동으로 안산의 문화와 예술은 지금보다 진일보한 면모를 갖출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는 해양 생태산업도시로서 문화와 예술의 공존을 통해 안산의 위상을 정립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될 것이다.

 

안산=구재원기자 kjwoon@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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