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나를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함

지난 여름 센터의 외국인 숙소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내용인 즉 친구가 자고 있는 방에 다른 한 외국인 친구가 가만히 들어가서 노트북을 들고 나오다가 잠에서 깬 노트북 주인에게 발각된 사건이었다. 이 일로 며칠간 외국인 센터가 시끌시끌하였다. 노트북 주인은 자신의 허락 없이 자고 있는 동안 가만히 들고 나간 것은 절도라고 여겼으며 노트북을 들고 나간 친구는 전에도 빌려 쓴 적이 있었고 친구가 잠자는 것을 방해할까봐 가만히 움직였다는 것이다. 며칠이 지나 두 사람을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때 의심받은 그 친구는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친구가 무척 섭섭한 듯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양심을 믿어 달라고 애소(哀訴)하였다. 일단 물건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양심을 믿어달라고 하는 그 친구의 말을 믿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노트북 주인을 설득하여 문제를 수습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결백함을 타인에게 증명할 수 없을 때 마지막 방법으로 “내 양심을 믿어 달라”고 강변한다. 그와는 반대로 막무가내로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너는 양심도 없냐? 양심껏 말해라” 고 윽박지르기도 한다. 그런데 ‘양심’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는 진실한 소리”이다. 그것은 법보다도 상식보다도 더 내밀하며 더 진실하고 더 정직한 무엇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다 지니고 있으며 비록 그 소리를 짐짓 짓밟을 수는 있어도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의 잣대나 내면에서 들리는 그 소리의 크기는 사람마다 동일하지 않다. 많은 경우 우리들의 양심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이나 습득된 지식에 의하여 제한된다는 것이다. 잘못 습득된 지식은 그의 양심까지도 왜곡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양심을 옳게 사용하기 보다는 남을 윽박지르는 때나 남을 공격할 때 혹은 변명하거나 방어할 때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양심은 ‘자신을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한다’ 는 성서의 말이나 우리의 조상들의 ‘배나무 밭에서 갓 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옛 말처럼 내 양심만 옳으면 별 일 없다는 식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도 내 양심이 시험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듯 ‘양심의 바른 사용’이 우리 사회를 더욱 행복하게 하리라고 생각한다. 

김영수 안산다문화가족  행복나눔센터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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