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스산함을 전해주는 11월의 초엽, 이제 겨우살이 준비에 짙푸름을 지나 홍갈색으로 옮겨가는 느티나무가 한 해의 아쉬움을 전해주는 시절이 됐다. 가을로 채색된 느티나무를 바라보노라면 어린 시절 즐거웠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서 간다. 이와 같은 느낌이 어찌 나만의 추억이겠는가?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겐 같은 느낌으로 다가서는 추억 나무다.
어린 시절 느티나무는 작은 곤충들이 숨쉬는 삶의 터전이었고, 새들에게는 먹을거리가 풍성한 장소였으며, 많은 것을 가진 나무이기도 했다.
느티나무와 사람들 간의 인연은 더 각별했다. 여름 한낮 뙤약볕을 피해 찾은 농부에게 느티나무는 낮잠 한잠에 고단함을 풀어 주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냈다. 동네 개구쟁이들에겐 개울에서 멱 감고 쉬어갈 수 있는 쉼터였으며, 어쩌다 느닷없이 소나기라도 올라 치면 소꼴 베던 동무들이 뛰어와 잠시 소나기를 피하던 추억의 수채화였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무더운 여름의 휴식처로 느티나무만한 것이 어디 있었을까? 나른한 졸음이 오고 살아가다 쌓인 피로를 풀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기에 느티나무 하면 휴(休)가 생각난다. 느티나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사람(人)이 나무(木) 그늘 아래 서 있을 때에 비로소 사람은 휴(休)의 행복이 시작된다는 자연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자연이 주는 가르침, 느티나무는 한없이 베푸는 넉넉함을 가졌다. 미물에서 인간까지, 모두를 받아들여 품어주는 포용의 아름다움을 가졌다. 느티나무는 바람도 없이 자기가 가진 것을 편하게 모두 내어 준다. 미운 친구 밉다 하지 않고, 좋은 친구 좋다 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그늘을 주고, 먹이를 주고, 쉼을 주고, 아름다운 믿음도 만들어 낸다.
우리의 마음에 이 같은 느티나무가 어디 없을까? 미운사람 고운사람, 가진 이와 그렇지 못한 이 등 이런저런 사람 모두 받아들여 그 위치에서, 그 처지에서 함께 공감하고 그 마음을 함께 품어줄 수 있는 그런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 그리운 가을이다. 느티나무가 주는 교훈이 소중하다.
이장우 안양과천교육지원청 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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