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출판도시, 국가사회의 공공인프라

출판계 동료들과 손잡고 출판도시의 건설에 참여해, 한강 하류변 이곳으로 입주해 일한 지 8년이 되어간다. 북한땅이 바로 건너다 보이는 출판도시에서 책을 만들면서 나는 생각한다. 한 시대의 지성과 한 국가 사회의 문화를 어떻게 창출해낼 것인가.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과 사상의 근거로서의 출판문화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우리 국가·사회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이론과 사상으로서의 출판문화, 우리 민족공동체를 지탱하는 경제와 산업과 과학을 일으켜 세우는 근거로서 책의 힘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파주출판도시를 시작한 지 20년도 더 되어간다. 반듯한 책의 가치와 철학, 지성과 문화의 힘을 이땅에 한번 실현해보자는 것이 우리들의 꿈이었다. 함께 헌신하고 모색하는 출판인들의 유토피아였다. 그리고 지금은 제1단계를 끝내고 제2단계의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 건설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출판은 지식·경제발전 원동력

파주출판도시는 출판인들의 꿈과 열정으로 실험되고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러나 출판도시는 우리 국가·사회의 성원들이 함께 가꾸어 나가야 할 문화적 인프라다. 출판이란 한 시대를 일으켜세우는 지식과 정신과 도덕이기 때문이다. 교육과 과학과 정치와 경제의 발전동력이기 때문이다.

 

출판인들의 책 만드는 일이란 당초부터 공공성을 갖고 있다. 파주출판도시는 이미 우리 출판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국가사회의 공공인프라다. 파주시민의 것이고, 경기도민의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것이다. 아니 세계인들의 문화적 자산이다. 이 공공인프라에서 어떻게 하면 출판문화를 제대로 창출해 낼 것인가가 우리 모두의 과제다.

 

한 시대의 출판문화란 어느날 하루 아침에 도약할 수 없다.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성원들의 책 읽기, 책 쓰기, 책 만들기가 축적됨으로써 이윽고 가능해진다. 출판문화란 슬로건 같은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반듯한 출판문화란 우리 국가사회를 반듯하게 일으켜 세우는 장기적인 프로그램이다.

 

흔히 창조적 발상을 말한다. 이 21세기에는 창조적 발상이 뭘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러나 창조적 발상이 어디 하늘에서 하루아침에 떨어지는 것일까. 책 읽고 토론하며, 책 만들고 책 쓰지 않는 시대와 사회에서 창조적 발상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와 문명을 선도하는 명예는 책과 함께 하는 인간들에게, 생각하는 삶을 일상으로 누리는 공동체에 주어질 것이다.

 

반듯한 ‘출판문화’ 함께 만들어야

파주출판도시란 창조적 발상을 도모하는 인프라다. 지금 파주출판도시에서는 8천여명이 창조적 발상의 수단과 방법인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제작해 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우리 출판문화를 반듯하게 키워내는 문제를 우리 함께 생각해야 한다.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파주출판도시의 출판문화 생산조건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고 있다. 보다 지적이고 문화적이며, 보다 정의롭고 민주적이며, 전쟁이 아닌 평화의 철학과 실천을 행동으로 해내며, 보다 생산적이고 복지적인 국가사회를 구현하는 이론과 사상과 전략으로서 파주출판도시는 존재하기 때문이다.

 

파주출판도시 출판인들의 이런 저런 대안과 주장은 사실은 우리 국가사회를 어떻게 바로 세우고 제대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온 한국인들이 당당하고 품격 있는 세계시민이 될 것인가 하는 과제도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읽고, 쓰고, 만드는 책의 문제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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