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초의 경제자유구역

시장인수위원회에서 현재 건설 중인 한국근대최초사박물관의 명칭을 한국개항박물관으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서면서 인천은 새로운 미래창조를 위한 더 큰 틀의, 더 높은 목표가 주어지게 되었다.

 

세계 3대 경제자유구역이라는 더 높은 목표와 경제수도라는 더 큰 틀의 비전이 수혈되었다. 미래는 과거의 평균값 주변에서 맴돌게 마련이지만 대변혁의 역사는 자주 오지는 않는다. 인천 대변혁의 역사는 한마디로 개방과 국방 파노라마이다.

 

백제의 능허대가 개항의 시초라면 통일신라의 혈구진은 국방의 상징이고 고려의 강화, 교동, 자연도(영종도)가 개방의 맥이고 조선을 거쳐 강화도조약 이후 제물포는 개항의 조계가 설치된다. 한마디로 인천은 개항과 국방의 파노라마이다. 역사는 다시 인천상륙작전을 넘어 대한민국 최초의 경제자유구역으로 넘실거리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의 확산과 이에 따른 거품을 거두려는 노력이 교차하는 가운데 정책적 일관성은 고속도로 휴게소와 같이 투자자를 유혹하고, 개방적이지 못한 국민의식과 각종 규제는 고질적인 병목현상으로 발목을 잡는 것 같다.

 

정책적 일관성으로 중국의 푸둥은 최고 실권자의 지속적 실용노선, 싱가폴 이광효의 생존철학, 아일랜드의 개방과 관용의 문화( Temple Bar), 스웨덴의 바이킹 정신 등이 언급된다. 인천의 개방과 화합의 낙조와 같은 문화유산이야말로 인천의 일관된 정신일 것이다.

 

고질적인 병목현상을 극복하고 더 높은 목표를 오르기 위해서는 제로베이스에서 출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과거가 묻히면 과거가 아니다. 인천의 개방과 화합의 낙조와 같은 문화유산이야말로 묻힐 수 없는 과거이기도 하다.

 

인천의 개항장의 모습은 청국의 경우 차이나타운이 창조적 복원을 대신하고 있고 일본의 경우 일본제일은행 등 몇 채가 양관풍의 일인건조건물로 남아 있다. 독일인이 설립한 세창양행숙사와 존스턴별장은 전쟁 중 파괴되고 제물포구락부만이 남아 있다. 이러한 유산은 홍보되고 창조적 복원을 통해 관광자원화되어 인천정신을 대외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장성욱 인천 인재개발원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