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는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장군이라고 한다. 맥아더장군은 12개의 표창을 받았다. 세 번째 추천에서 받은 명예대훈장, 세 개의 십자무공훈장, 일곱 개의 은성훈장, 그리고 두 개의 상이군인기장이 그것이다. 미군 역사상 현재 생존해 있거나 죽은 장교를 통틀어 이 기록에 버금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용감한 자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자에게” 이 말은 그가 지휘하던 한 사단으로부터 받은 금제 담배 케이스에 박힌 말이다. 윈스턴 처칠은 그를 미국에서 가장 용기 있는 장군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맥아더는 용기의 상징이다. 인천상륙작전의 콘셉트는 맥아더 장군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에서 죽음에 대해 맥아더장군은 명확한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 덕분이라고 했다. 또한 맥아더의 말 중 “누구든지 영원히 살 수는 없지”, “나를 위해 만들어진 탄환은 아직 발사되지 않았어” 이 말은 일본에서 했지만 필리핀, 보르네오 등에도 유사한 사례가 많다.
한국전쟁에서 현장의 군사적 합리성은 투르만 대통령과 마찰을 초래하고 맥아더장군은 해임된다. 여기서 남는 가정은 “명장은 총알에 맞지 않는다”는 스토리텔링이다.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그러면 우리의 이순신 장군은 왜 마지막 해전에서 총에 맞아 운명을 달리한 것일까. 명장이 총에 맞았다는 것은 하나의 모독일 수도 있다. 장수의 몸에 조심성은 필수적인 것이다. 쿠바의 피델카스트로는 자신에 대한 암살 시도가 600여 차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하다 보면 스토리텔링이 가능하다. 과공은 비례라는 말이 있다. 한고조 유방 밑에 한신과 장량 그리고 와신상담, 오월동주에 고사에 나오는 범려가 그러하다. 범려는 공을 세우면 떠났고 장량은 신선술 공부를 위해 요직에서 물러났다. 전쟁의 신 한신은 머물다 결국 모반죄로 죽게 된다.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콘셉트와 현장 그리고 스토리에 더해 주변이 가꾸어 지면 더 좋을 것이다. 인천 송도가 경제자유구역이 되면서 근무했던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주변은 현장을 상실한 기분이다. 장성욱 인천인재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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