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떤 사업가 한 분으로부터 향후 예상될 수 있는 분쟁을 감안, 약정서 초안을 작성해 줄 것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 그 분은 이미 그 약정과 관련해 예상될 수 있는 세무 상담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으니 참으로 현명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민사소송사건을 처리하다보면 계약서와 같은 근거 문서를 아예 작성해 두지 않았다거나 작성했더라도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느슨한 생각으로 조항을 대충 만들었다가 나중에 그 조항 때문에 분쟁이 생기고 때로는 막대한 손실까지 입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통의 경우 어떤 입증사항에 대해 증언과 문서증거가 모두 있다면 후자의 증거가치가 우월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일은 비단 문서 작성의 경우에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형사소송 사건에서도 피고인이 이전에 수사기관이나 조사기관에서 별 생각 없이 한 몇 마디의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물론 진범이 범행을 부인하던 중 실수로 한마디를 내뱉었다가 그것이 유죄의 단서가 된 말이라면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있지도 않은 사실관계에 대해 의심을 받아 기소된 사람이 이전에 별 생각 없이, 혹은 다른 뜻으로 한 말이 족쇄가 된 경우에는 그 오해를 풀기 위해서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런 사건들을 보면, 비록 그 당시는 비용이 든다거나 시간이 걸리는 등 여러 사정이 있었겠지만, 계약서나 약정서를 작성할 때 전문가에게 한번 보이기라도 했더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처음에 조사받을 때부터 전문가로부터 그 사건이 향후 전개될 수 있는 방향에 대해서만이라도 조언을 받았더라면, 호미로 막을 것을 나중에 가래로 막을 일이 없게 되었을 텐데라는 안타까움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굳이 전문가에게 계약이나 약정 체결에 참여시키거나 대리권한까지 맡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계약서 등과 같은 중요 문서에 기재할 용어의 적정성만이라도 검토받는 정도의 노력은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동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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