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재조명‥"아직도 곳곳에 파시즘적 요소", "시민사회 주목하라"
1960년 3월 15일 우리나라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3인조 또는 5인조로 나눠 공개투표를 하는가하면 대리투표를 일삼았다.
부정선거 의혹이 일면서 이날 마산에서는 시민과 학생들의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하지만 경찰이 총을 꺼내들면서 시위는 유혈사태로까지 번지고 말았다.
같은 해 4월 11일 실종됐던 故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에서 발견되면서 학생과 시민들이 일제히 거리로 뛰쳐나왔다. 18일에는 교문을 박차고 나온 고대생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
일주일여 후인 26일 드디어 이승만 전 대통령은 마침내 권좌에서 물러나겠다는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4.19 혁명이 일어난지 19일로 50주년을 맞았다.
4.19 50주년을 기념해 우리나라에서는 4.19 혁명에 재조명 열기가 뜨겁다.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되돌아보자는 것이다.
건국대 이상호 교수는 "4.19 혁명을 민중의 기억 속에서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4.19 민주화 운동이 제도적으로 정착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계파정치 및 계급질서와 함께 비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상존하고 있다"면서 "경제 양극화와 인종 차별 등 아직도 우리나라 곳곳에는 파시즘적 요소가 드리워져 있다"고 지적했다.
4.19 혁명의 역사적 의의를 새로운 시각에서 찾으려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고트프리트-칼 킨더만 독일 뮌헨대 명예교수는 4.19 혁명이 단순히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사건이 아니라 전통적인 유교 개념을 무너뜨린 학생 봉기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4.19 민주혁명의 정신과 외국의 인식'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승만 체제는 '전통적 권위에 대한 충성이라는 전통적 유교 개념'을 토대로 구축됐던 것"이라며 "당시 학생들은 미국의 영향으로 민주주의 원칙을 배우며 자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후 학생운동이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의 패배를 이겨내고 1987년 6월 혁명으로 이어져 승리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영남대 김태일 교수의 경우는 "민주화 세력은 4.19 혁명의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작금의 민주화 세력을 꾸짖기도 했다.
그는 지난 15일 인천대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4.19 혁명은 시민사회의 힘 덕분에 일어났고, 혁명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먼저 시민사회를 주목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4.19 혁명의 정신을 이어간 것이 촛불시위라는 분석도 나왔다.
고경민 제주대 교수는 '2000년대 인터넷과 시민의 정치참여: 촛불시위 사례'를 통해 지난 2002년과 2004년, 2008년에 있었던 촛불시위를 4.19 혁명의 계승이라고 해석했다.
이 밖에도 "4.19 혁명이 21세기를 비살상 세계로 변회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글렌 페이지 하와이대 명예교수는 '4월 혁명과 비살상 한국'이라는 글에서 "당시 학생들과 교수들이 보여준 비폭력적인 모습은 내전과 전쟁, 일상적 폭력의 문화 등에서 해방될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이 같이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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