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펀지는 일반적으로 침구, 방석, 청소용구, 목욕용, 화장용, 의료용 등으로 쓰인다. 이런 일들은 스펀지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며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그 자신은 닳아지고, 추해지고, 기능을 상실하고 드디어 버려지고 만다. 그리고 그 버림은 아무도 서운해 하지 않은 채 잊혀진다. 스펀지는 일만 하다 스러진다 해도 단 한 번도 이견을 내놓는 법이 없고, 도망도 가지 않고, 거기에 붙박여 종의 자격으로 지낸다. 어쩌다 쉬기도 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간이 쉬고 싶을 때 쉬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인간이 스펀지를 그런 목적으로 이 세상에 만들어 내놓은 것이지만 그래도 난 거기에 희생이라는 말을 부여하고 싶다. 희생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스펀지와 여성은 비슷한 점이 있다.
이 사회구조는 세뇌를 통해 가부장적 개념이 당연시되어온 남성 중심적이다. 냉혹하게 말해서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는 남성의 욕망이 폭력적으로 작용한 것이라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은 ‘어떤 특질들의 결핍으로 여성이 된다’고 했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자란 ‘불완전한 남자’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남존여비’, ‘여필종부’, ‘삼종지덕’ 등의 사고방식이 있다. 인간사회는 이런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결부돼 집단무의식이 형성되면서, 사회의 구성원들이 맹목적으로 믿는 사회적 신화로 됐다. 이에 누구도 가감 없이 인식해 버린 채, 남성은 지배적, 능동적, 여성은 종속적, 수동적인 존재로 지속적으로 교육돼, 남성은 주체로서 기능하는 반면 여성은 남성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여성은 ‘가사노동자로서의 여성 ’, ‘생물학적 측면에서 생산보육자로서의 여성 ’으로 가사영역 안에 묶여 살도록 강요당한다.
여성은 스펀지처럼 가족을 위해 닳고, 추해지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성으로서도, 여성으로서도 별 가치가 없어져가는 것이다. 스펀지가 말없이 뭔가를 위해 일하다 닳아 없어지듯 여성 또한 가정 안에서 닳아 없어지는 것이다. /김원옥 인천 연수문화원장·시인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