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일부 합리성 잃은 튀는 판결에 이어 이번엔 검찰의 준비성 없는 공소 제기를 보게 됐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 1심 재판 결과가 이렇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가 이 사건에 무죄를 선고한 건,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한다는 증거재판주의의 원용으로 해석된다. 물론 검찰은 한명숙 피고인에게 뇌물로 5만달러를 건넸다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이 수사 및 재판에서 공여 사실을 줄 곧 인정했다며 이의 증거능력을 주장했다. 그러나 뇌물 공여 진술에 일관성과 합리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무죄 선고 이유다.
뇌물의 물증은 없이 주었다는 진술만이 유일한 것이 공소사실의 전부다. 그렇다면 비록 공여 자체의 진술은 일관되게 있었을지라도 금액 등 몇 가지 내용이 오락가락하여 합리성이 의심되면, 일관성을 잃었다고 보는 것은 대법원 판례에도 나와 있다.
재판부는 ‘뇌물을 어떻게 전했다’는 것을 특정해달라며, 검찰에 공소장 변경을 권고하기도 했다. 공소 제기가 얼마나 허술했던 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판 과정에서 골프채 선물, 리조트 이용 등 한 전 총리에게 불미스런 말도 나오긴 했다. 이만이 아니다. 아들 미국 유학비 4만5천달러설도 나왔다. 재판부가 이에 판단을 내리지 않은 건, 증거 대상으로 안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판부가 이례적으로 검찰의 수사과정을 문제 삼은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을 비판적으로 예단, 수모를 준 것은 변호인이 할 소임이라고 믿는다. 선고와 별 관련이 없는 내용을 판결문에 담은 것은 재판부가 할 일이 아니다.
어떻든 이번 일을 계기로 검찰은 공소 제기에 좀 더 치밀한 대비를 갖추는 경각심을 가져야 된다. 기소독점주의에 걸맞는 대응이 있어야 공소권 남용이란 말을 듣지 않는다.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해 따로 벌이는 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 역시 마찬가지다. 세간의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히 증거 위주의 수사를 해야 한다.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의 무죄에 불복,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의 추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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