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원숭이

나의 유년시절, 6·25 전쟁 포화로 피난길에서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넘긴 후 다시 고향인 부평에 돌아와 무료함을 달래려 놀이감을 찾곤 했다. 그 중 이웃집 형들이 부르는 노래, “원숭이 똥구멍은 빨~개”로 시작해 “높으면 백두산”으로 끝나는 구전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기도 했다. 실제로 빨간지 본 적이 없었으나 몇 년이 흐른 후 창경원에 가서야 구경할 수 있었다.

 

왜 원숭이의 빨간색 항문이 관심사가 돼 노래 소재가 됐을까 생각해 보면, 작자 미상의 노래라 확인할 길은 없지만 당시 국가와 사회의 이슈가 안보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에 있다고 여겨진다.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 또다시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피땀 어린 경제 재건의 숨가쁜 역사를 체험했기에 ‘자나 깨나 불조심’이라는 구호처럼 반공이라는 국가 사회적 가치는 늘 최우선 순위에 있었다. 그러므로 당시의 사회적 관심 대상인 일장기와 원숭이 항문, 그리고 반공, 불조심 모두 다 상징적인 색깔의 공통점이 빨간색이다.

 

이제는 세계 10대 무역국으로서 한국경제력을 온 세계가 부러워 할 만큼 강성한 나라가 됐으나 여전히 불안한 것은 적화통일 노선을 고수하고 있는, 무늬만 동족인 북한의 호전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북한경제력의 한계가 풍선효과로 불어올 때에 예측할 수 없는 막장도발을 감행할 우려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늘 시한폭탄을 안고 자는 것처럼 불안해 조그만 사건이라도 안보와 연결된 문제가 발생하면 나라가 온통 뜨겁게 달구어진다. 최근에 발생한 원인 모를 천안함 침몰사건을 통해 실종자 가족들의 애끓는 절규와 생환자의 눈물을 바라보는 노년세대의 시선에서 안타까움을 읽는다. 혹시나 국가안보에 구멍이 생긴 것은 아닐까 우려하는 시각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러한 생각은 다년간 노인대학의 학장으로 일하며 노년세대의 관심도에 따라 다양한 교양강사를 초빙하지만 그 중에 특별히 안보강연을 할 때마다 어르신들이 진지한 태도와 시선을 집중해 강의를 청취하는 모습에서 확인된다.  /장성훈 부광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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