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친구들과 모처럼만에 전통시장 국밥집을 찾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옆자리에 들어와 앉은 초라한 행색의 사내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에게 눈길이 갔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이상기온을 감안할 때 둘은 모두 추워 보였고, 집이 지척인지 맨발에 슬리퍼만 신고 있었다. 사내는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을 시켜 딸의 빈 그릇에 국밥 몇 수저를 덜어 주고, 남은 국밥과 소주 한 병을 급히 비우고 일어났다. 아이가 떠난 자리에는 아빠가 덜어 준 국밥이 반 정도 남아 있었다. ‘그 아이에게 저녁이었을 것을···. 다른 끼니는 어찌할까?’ 그 아이의 뒷모습이 한동안 잊히지 않으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소주가 더 쓰게 느껴졌다.
무상급식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실시 시기, 범위 그리고 방법을 놓고 연일 배운 어른들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은 지방선거에서의 공약을 넘어 사회적인 쟁점으로 점화된 분위기라는 기사를 접하고 문득 불안해진다. 그날 국밥집을 총총 나서던 아이의 뒷모습이 눈에 밟힌다. 그 아이의 먹을거리 문제가 혹시라도 정치 공방 속에 공약(空約)으로 사라질까 겁이 나고, 실행 가능성은 고려하지 않은 허울 좋은 어른들만의 정책에 그 아이가 상처받을까 두렵다. 거리에는 지역 일꾼을 자처하는 지방선거 후보들의 수많은 공약(公約)이 넘쳐난다. 이러한 논쟁과 공약의 중심에 현장(現場)은 얼마나 녹아 있을까? 선거에 즈음하여 책상 위 PC 모니터 안의 수치와 지도, 그리고 문장들이 트랜스포머(transformer)처럼 합체되어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출몰한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지역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직접 민생현장에 가보시라. 바람처럼 휙 지나치지 말고, 그 자리에 머물러 그곳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정말 진지하게 들어 보시라. 현장에는 그 곳의 문제점뿐만 아니라 다양한 해결책이 함께 숨어 있다. 어느 때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때이다.
/권혁성 수원발전연구센터 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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