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날, 남성의 날, 그리고 ‘나의 한 표’

지난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신문 첫 면을 장식할 정도의 기념일은 아니었지만 지역별로 여성단체 등에서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주제로 이런저런 행사를 주관하였다는 기사들이 지면에 보도되었다. 그런데 애초에 세계 여성의 날이 제정된 배경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저 요즘은 곳곳에서 여성의 권리 주장을 하고 있으니 그 중 하나 아니겠나 하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다.

 

왜 세계 남성의 날은 없고 여성의 날만 있을까? 우선, ‘남성의 날’도 있다는 사실부터 말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남성의 날을 기념하지 않지만 미국, 유럽, 호주, 아프리카 등의 여러 나라에서 해마다 11월19일을 남성의 날로 정하고 기념식을 비롯한 행사를 갖는다. 그런데 행사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21세기 남성의 권위가 위협받고 있다거나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내용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남성들이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되찾고, 일 중심으로 생활하느라 잃어버린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나누는 자리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또한 우리 사회의 평범한 남성들이 가정과 사회를 위해 묵묵히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감사하며 여성과의 조화로운 파트너십을 만들기 위한 방법도 모색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남성의 날도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왜 세계 ‘남성의 날’이 표방하는 캐치프레이즈가 ‘여성의 날’의 그것과 다른 것일까? 이는 여성의 날이 애초에 만들어진 배경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10년 독일에서 처음 제안되어 1911년 3월19일에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첫 번째 행사를 갖게 된다. 이때의 주제는 여성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평등 보장이었다. 20세기 초반까지도 여성들에게는 선거권이 없었고, 열악한 근로 조건 하에서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혹사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월19일에 첫 기념 행사를 한 이유는 1848년 프랑스 혁명 때 3월19일에 발발한 시위가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프러시아 황제가 여성들에게 선거권을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권은 여전히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3월19일이던 여성의 날은 1913년부터 3 월8일로 변경됐는데, 1908년 3월8일 미국에서 노동권 보장과 선거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여성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투쟁과 항의, 시위 등을 통해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것은 영국이 1918년, 미국이 1920년이었다. 남성들은 선거제도가 만들어졌을 당시부터 당연히 선거권을 가졌다. 다만 흑인 남성들은 백인 남성보다 뒤늦은 1860년~1870년 무렵이 되어서야 선거권을 인정받게 된다. 여성들은 백인이건 흑인이건 20세기에 진입한 뒤에도 선거권을 좀처럼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현실이 그러하니 여성들의 경제적,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 여성의 날이 필요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다행스럽게도 독립을 되찾으면서 1948년부터 성인 남녀에 대한 참정권이 동시에 보장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투표율은 남녀를 불문하고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 그래도 60% 수준을 유지하는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에 비해, 지역사회를 위해 직접 봉사할 인물을 선출하는 지방선거의 투표율은 특히 더 낮다. 2006년 제4회 지방선거 때 전국 투표율은 52.1%였는데 경기도의 투표율은 남녀 각각 47.5%와 46.1%로 인천광역시와 광주광역시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낮았다.

 

오는 6월에는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여성의 날 행사를 다채롭게 벌이는 것보다도, 남성의 날은 왜 없느냐를 따지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힘들게 싸워준 분들 덕분에 얻은 한 표의 권리를 여성도, 남성도 빠짐없이 행사하는 데 있을 것이다. 

 

/손영숙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성평등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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