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 신문을 펼치면 한해를 마무리하는 기사가, 라디오에선 송년의 아쉬움을 달래는 노래가, TV에서는 무슨 무슨 대상(大賞)하며 인기 스타들의 화려한 시상식 예고편이 한창이다. 이런 풍경이 나라 밖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한해를 보내고 한해를 맞이하는 우리네 심사는 동서(東西)가 따로 없는 듯 하다.
한 나라의 수준과 문화를 보려면 그 나라의 TV프로그램을 보라는 말이 있다. 보도, 교양, 오락, 스포츠 등 다양한 프로그램 속에서 그들의 과거와 현재의 생활상을 알 수 있고 또 미래까지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그것은 어떨까? 엄청난 미디어 파워의 공중파를 비롯한 수십 개의 케이블 방송을 둘러보니 가히 걱정이 앞선다. 똑같이 생긴 걸(Girl) 그룹과 미소년들이 떼로 나와 야릇한 춤사위로 보는 이를 홀리는 것은 애교로 넘길 수도 있다.
문제는 TV가 균형감각을 잃은 채 ‘바보상자’로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점이다. 소위 연예 버라이어티쇼라는 오락물들이 그것이다. 그 얼굴이 그 얼굴, 그 내용이 그 내용, 그 느낌이 그 느낌이다. 수준 이하의 구성으로 억지 웃음을 강요하는 것이 도가 지나치다. 시청률에 목숨 건 방송사나 출연 연예인들의 몸부림은 더 이상 연민의 정이 아니다. 전국민의 소유인 방송 전파를 이런 식으로 사용하는 횡포가 어이없고 일반인들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고액을 챙기는 연예인에게 받는 초라함과 박탈감에 화가 난다.
국민들의 여망과는 아랑곳 없이 연일 다툼과 혼돈으로 헤매는 우리 사회에 대한 실망인가. 더 바라거나 기댈 것 없는 이 사회에 대한 반작용인가. 소시민의 따분한 일상사에 대한 대리만족인가. 하지만 우리의 정서와 문화를 말해주고 또 새로운 문화와 미래를 이끄는 것이 방송이다. 그래서 새해에는 달라져야 한다.
상식과 양식이 살아있는 이야기, 함께 더불어 사는 따뜻한 이야기, 도전과 용기에 박수치는 이야기, 세계속의 자랑스런 우리네 이야기 같은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지는 그런 새해를 꿈꿔 보자. /김홍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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