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첫눈이 제법 그럴싸하게 내렸다. 마침 개인적으로 교외에 나가있던 터라 설경을 원없이 볼 수 있었다. 온통 흰 세상을 사진기에 담으면서 문득, 참 푸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눈의 성질은 매우 차가운 것이다. 손으로 만져보면 차갑고 한참을 손에 가지고 있으면 녹아 없어진다. 그런데도 우린 눈이 오면 왜 포근하다는 생각을 하는걸까? 아마 눈이 주는 시각적인 효과 때문일 것이다. 고등학교때 배운 국어책에서는 나뭇가지에 쌓인 눈을 하얀 밍크코드를 입은 것으로 표현했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눈을 통해 비록 냉철함을 가졌지만 따뜻함으로 다가가는 눈같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새로운 지혜를 배우게 된다.
혹 가족이라는 관계도 그런 것이 아닐까. 어찌 보면 혈연이라는 끈끈한 정으로 뭉쳐져 있지만 개개인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낼 수 있어야 하고 또 뭉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끌어 내는 것, 마치 눈이 뭉치면 뭉칠수록 더 큰 눈 덩어리로 하나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눈은 우리에게 가슴 설레던 첫사랑의 기억처럼 순수함을 일깨워 준다. 가족도 마찬가지라 생각된다. 세상에 나가서는 지위와 체면, 명예 때문에 저마다의 가면을 쓰게 되고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얼굴로 살아가지만 가족에게로 돌아오면 어떤 고관대작도 그저 아버지요, 아들일 뿐이고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 부모에게는 아직도 어린 자식에 불과한 것처럼 말이다. 팔순의 노모가 환갑이 넘은 아들에게 차 조심을 당부하고 환갑의 아들은 노모의 즐거움을 위해 색동저고리를 입었다고 한다.
비록 하찮은 자연물의 하나이지만 내리는 눈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릴적 눈은 강아지 마냥 그저 즐거워라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며 놀이의 대상이였지만 훌쩍 커 버린 지금 내리는 눈은 교통체증과 불편함의 측면으로 다가오는 나를 보면서 잃어버린 동심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망연자실하게 된다.
이제 2009년을 보내면서 다시 한 번 눈처럼 깨끗한 맘으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맞이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허물을 흰 눈으로 덮듯이 2009년의 어려움과 상처를 사랑과 감사로 덮어내고 새롭게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박정자 미추홀종합사회복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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