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등장하고 거리 거리마다 캐롤송과 화려한 장식 사이로 불우이웃을 돕자는 메시지가 연례 행사처럼 등장한다. 우리의 불우이웃은 항상 존재해 왔었는데도 늘 연말에만 기억하는 듯 전시적인 효과에 급급한 행태를 자주 보게 된다.
보육원에서 자라 성인이 된 어떤 분은 사진 찍는 것이 죽기 보다 싫다고 한다. 이유는 자다 말고도 어떤 후원자가 라면 박스나 연탄을 들고 고아원을 방문하면 불려 나가서 후원자와 함께 일렬로 세워져 사진을 찍어야 했던 기억이 매우 상처로 남았다고 했다. 우리들이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것들도 그들에게는 가슴 아픈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미쳐 해보지 못했음에 마음이 짠해 왔다.
이렇듯 도움과 나눔은 상대적일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선한 의도도 상대방에게 상처나 굴욕감을 준다면 그 의도는 반감 될 것이다. 따라서 선의는 도움을 받을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도와줄 때 더욱 나눔의 기쁨은 배가 되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어릴 적에 들려 주던 ‘성냥팔이 소녀’라는 동화책이 있다. 추운 겨울날 결국은 계부의 학대로 거리로 내몰린 어린 소녀가 거리에서 얼어 죽는다는 내용이다. 따뜻한 집에서 포근한 잠자리에 든 아이에게 이 동화책을 읽어 주었을 때 아이가 반짝이는 눈망울로 물었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이 아이를 도와주지 않았어요?” 아이의 뜬금없는 질문에 할 말이 궁색했다. 지금 우리의 무관심이 또 다른 ‘성냥팔이 소녀’를 만들고 있지는 않는지.
가족은 한 지붕 아래 살면서 함께 희노애락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가족은 같은 집에 살아도 오히려 더 무관심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부부간에 대화가 줄어 들고 아이들은 학원으로 내몰리면서 부모와의 단절 속에서 방황하지는 않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제는 좀더 우리의 생각을 바꿔 볼 때다. 내 지붕 아래의 가족들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 우리의 이웃과 지역사회가 커다란 가족의 지붕으로 묶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더이상 무관심 속에 소외되는 슬픔이 없어야 한다. 이웃과의 나눔은 작은 관심에서 시작되며 이 겨울 외로움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시선으로 지역사회 안에 하나로 뭉쳐진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길 바란다. /박정자 미추홀종합사회복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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