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 되돌리는 ‘리턴 프로젝트’

며칠간 을씨년스런 날씨를 보이더니 얼마전부턴 가을과 겨울이 교차한다. 그래서인지 겨울의 문턱이지만 짬짬이 내비치는 따스한 기운은 마지막 가을의 단상에 젖어들게 한다.

 

가을의 끝자락과 겨울의 첫 자락이 서로를 잡아끌며 힘겨루기를 한다. 단풍이 옷 벗은 가지에 자리를 내어주고 낙엽은 이리저리 겨울 채비로 분주하다. 쪽빛 하늘이 잿빛 하늘로 너무 빨리 바뀌지는 말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학운공원 벤치에 몸을 맡겼다.

 

가을은 왜 이리 짧은 걸까? 가을을 탄다는 건 마음이 탄다는 게 아닐까. 그랬다. 불과 한 달 전 가을이 절정을 이뤄 차라리 눈물겨운 그때였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는 해보았는지. 오색으로 달려가는 기차, 먼 산 풍경의 차창을 만져는 보았는지. 하릴없이 산사 풍경소리 쪽마루에 앉아는 있어 보았는지. 가을햇살 사색(思索)벤치에 빠져는 보았는지. 낙엽지는 카페 찻잔을 벗삼아 보았는지. 낙엽 타는 냄새를 맡아는 보았는지. 공원 저 편 누군가가 외로워 보이지는 않았는지. 그에게서 남모를 애인을 보게 되지는 않았는지…. 가을을 탈 새도 없이 세월이 유수다. 가을은 너무 차분해서 슬프다.

 

봄이 속삭임이요 여름이 환호성이라면 가을은 무언(無言)에 가깝다. 무엇하나 조신한 모습과 차분한 태도 아닌 것이 없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허(虛)해지고 가슴이 메어온다. 그래서 차라리 눈을 감아 버리는 게 나은 게 이 계절이다. 서서히 힘을 빼는 햇살이 절기(節期)만 바꾸는 게 아니고 마음까지 흔든다.

 

우리 안양은 곳곳에 크고 작은 공원들이 지천이다. 언론에서도 크게 칭찬했다. 그간 다른 용도로 쓰였던 부지를 시가 사들여 공원으로 조성해 시민들에게 되돌려주는 ‘리턴 프로젝트’가 큰 몫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일상의 휴식과 상념을 살려주는 녹색공간이 너무나 고맙고 소중하다. 가는 계절 못내 아쉬워 ‘가을타기’ 흉내를 한번 내봤다. 이런 호사도 공원이 있으니 가능하지 않겠는가. /김홍엽 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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