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는 누울 때에 머리를 괴는 물건이다. 베갯속은 왕겨, 좁쌀, 메밀나깨, 새털 등을 넣어 통통하게 만든다. 큰 언니는 내가 초등학교 때 시집갔는데, 희미한 초꽂이 불 아래서 한 땀 한 땀 수놓은 봉황문양 베갯모에 어머니는 왕겨와 잘게 썬 볏짚을 넣어 베개를 만드셨다. 그러나 내가 시집갈 때는 메밀가루를 체에 치고 난 뒤에 남은 메밀나깨를 넣어주셨다. 그리고 첫 아이를 낳자 좁쌀을 넣은 동글납작한 베개를 해주셨다. 이불은 목화솜으로 하시면서 베개는 왜 그렇게 하셨는지 궁금해도 지금은 물을 수가 없다.
요즘은 폭신폭신한 구름솜 베개가 대부분이다. 하루 종일 시간에 쫓기고 일에 지치고 관계에 시달린 날은 머리가 욱신거린다. 옷을 벗지도 씻지도 않고 쓰러져 아침이 될 때도 있다. 불덩이 같은 머리를 더욱 뜨겁게 밤새 싸안아 준 베개에 대해 거부감 없이 잘 지낸다.
차(茶)를 가루(粉)로 내어 차선으로 저어 거품으로 마시면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럽고 향기롭다. 또한 차의 성분과 효능을 다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차 잎(葉)은 열 번을 우려도 그 성분이 남는다. 이러한 차 잎은 그늘에 말려 예쁜 한지봉투에 담아 승용차 뒷자리나 신발장 또는 냉장고, 화장실에 두면 탈취작용을 한다.
차를 우려마시고 난 잎을 모아 베갯속을 채우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차 베개를 사용해 본 사람은 안다. 머리를 베개에 대면 녹차의 은은한 향기가 코끝으로 다가오고, 이저리 뒤척일 때는 차향이 솔솔 따라와 너무 편안하게 잠들게 한다. 아침에는 몸이 가볍고 머리도 맑다. 어머니가 목화솜으로 베갯속을 넣지 않은 뜻을 차 베개를 베면서 알게 됐다. 왕겨와 볏짚과 메밀나깨로 머리를 서늘하게 자극하여 지압효과를 얻는 지혜로움이 아니었을까. 갓난 애기의 좁쌀베개는 또 어떠한가.
차 베개를 만들어 가까운 지인에게 선물 했다. 외국에 나갈 때 책을 한 권 빼더라도 베개는 꼭 가져간다고 하여 웃었다. 뭉개진 베갯속 차 잎은 나무나 화초에 주면 잘 자란다. 차는 끝까지 버릴 게 없는 모양이다. /강무강 수원차인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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