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인론(茶人論)

우리차(綠茶)를 사랑하는 모임이 있었다. 1989년에 결성됐으니 정확히 20년 전 일이다.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그 당시 아주대 국문과 천병식 교수님이 회장이었다. 회원은 여덟 명으로 구성됐고 직업이 다양했다. 찻그릇을 만드는 도예가, 차 밭과 차 도구점(茶道具店)을 운영하는 사람, 차 떡과 차 음식 연구가, 차와 예절을 가르치는 선생, 차에 관한 시(茶詩)를 쓰는 시인, 찻상과 차실(茶室)을 꾸미는 공방 주인, 차 성분과 효능을 연구하는 교수 등으로 매월 정기적인 찻자리를 가졌다.

 

한번은 한국의 다인론(茶人論)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모두는 나름대로 차를 지극히 사랑하고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나, 정작 “어떤 사람이 다인(茶人)인가?”라는 질문이 나왔을 때, 한마디로 답을 내는 것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스스로 차를 우려 마시고 둘째, 이를 즐기며 셋째, 자의적인(스스로) 차 생활을 통해서 넷째, 차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다섯째,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진정한 다인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지난 시월에는 정조임금의 어진이 모셔진 수원화성행궁 화령전에서 정조대왕 탄신다례가 올려졌고, 행궁 유여택에서는 차문화 대축제가 열렸다. 차를 이용해 이 같은 큰 행사를 할 수 있었음은, 이십 년 전의 다인론 운운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차를 즐기며 또한 차 생활을 통해 차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여러 다인들의 힘이 아닌가 싶다.

 

맑은 생각을 하는 데에는 차가 약이다. 고운 습관을 익히는 것 또한 차가 묘약이다. 좋은 습관은 인격과 운명을 만든다고 하여, 우리차회 차실(茶室)에는 “연습만이 살길이다. 백 번과 천 번은 다르다”고 써놓고 매번 반복하도록 한다. 종교에 구애됨이 없이, 규격과 형식에 너무 끌려다니지 않고, 편리한 시간에 깨끗하게 마시는 차. 이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면 고단한 삶에 최고의 부가가치가 아니겠는가. /강무강 수원차(茶)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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