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 한 송이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은 물론 죽은 이의 영좌 앞에도 꽃이 놓인다. 사랑을 고백할 때, 생일을 축하할 때, 입학·졸업 또는 개업이나 승진을 축하할 때, 서먹서먹한 관계에 들고 가는 꽃은 그 의미도 다양하지만 종류에 따라 송이로, 다발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다.

 

꽃마다 상징이 달라 상황에 따라 꽃을 선택하지만 어쨌든 꽃이 전해질 때는 마음이 함께 담겨 간다. 마음과 마음으로 전해지는 꽃, 마음을 전하는 꽃, 이러한 마음을 전할 때 꽃송이는 어디를 향해야 될까?

 

올해는 역대 대통령이 두 분이나 서거했고 인기 높은 탤런트가 운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빈소에는 생전 모습 그대로의 영정이 있고 그 앞으로 하얀 국화 송이가 차곡차곡 쌓인다. 앞서 예를 올린 분이 올려놓은 꽃 위로 새로이 꽃이 얹어지고 영정 앞은 하얀 국화로 장식된다. 어느 빈소에는 꽃송이가 일제히 영정을 향하여 올려지지만 또 어느 빈소에는 조문객을 향하여 환하게 장식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카메라는 조문행렬에만 렌즈를 들이댄다. 물론 꽃 중의 꽃이 인꽃(人花)이니만큼 사람보다 더한 꽃이 어디 있겠는가.

 

손님을 초대해 떡 벌어지게 음식을 차려놓고 ‘별로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십시오’ 이렇게 인사하는 것이 우리네 인정이다. 이왕 마음먹고 찾아간 조문이라면 다만 국화 꽃 한 송이지만 ‘부디 편히 영면하십시오’하는 마음으로 단 일초라도 영정을 향해 한 번 높이 들어 올린 후, 꽃송이가 영정을 향하도록 제단에 올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늘 아쉽다.

 

언젠가 나는 꽃을 무더기로 받은 적이 있다. 입술 꼬리에서 행복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꽃을 사러갈 때의 발걸음은 더욱 행복했다. 행복한 마음을 전할 때 기꺼이 상대방을 향해 꽃이 보이도록 하자. 그것이 비록 국화 한 송이일지라도 마음과 마음이 교류하는, 아주 쉽고 간단하게 갖출 수 있는 예(禮)이기 때문이다.  /강무강 수원차(茶)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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