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행정체제 개편의 선행조건

최근 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특별위원회에는 6개의 지방행정체제 개편안이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법안 중에는 시·군·구 통합을 지원하는 안, 9개 자치단체인 도를 폐지하고 230개 시·군·자치구를 통합하여 70개 정도의 단층제 광역시로 개편하는 안, 시·도의 통폐합을 통하여 초광역지방정부를 구성하여 경쟁력을 높이려는 안 등이 제안돼 있다.

정치권과 정부는 내과 치료도 해보지 않고 대수술부터 하려고 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전국적으로 한꺼번에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하는 나라는 없다.

그 이유는 지방행정체제개편이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사회문화적·경제적 변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여야 간 극한 대립 속에서도 이 문제만큼 의기투합하는 것은 중대선거구제로 가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시도폐지 자치계층 단층제로 가기 위한 우회전략으로서 시군통합안에 대한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 광역지방정부인 도를 폐지하고 국가광역지방청으로 개편할 경우,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담보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관료제의 병폐를 피할 수 없는 관선국가지방청장과는 달리 민선 시도지사는 지역발전이 재선과 연결되어 민선 통합광역시장간 조정, 정치적 결단과 추진력이 요구되는 사업을 원만하게 추진할 수 있어 민선 광역시도지사를 포기할 수 없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는 광역지방정부의 경쟁력 강화를 위하여 그 인구규모를 500만~1천500만 명 정도로 초광역적으로 통합하고 중앙정부의 기능을 대폭 이관하여 그 역할과 기능을 강화하는 추세이다.

둘째, 지방정부의 단층화는 중앙집권을 가일층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시·도가 폐지되면 70여개 광역시에 대한 행·재정적 지원, 초광역권 개발, 광역시간 분쟁조정 등을 중앙정부가 직접 수행할 수밖에 없다.

결국 현재의 시·도 기능을 대행하는 중앙정부 직할의 광역행정기관 설치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시·도 일부조직과 기능을 중앙정부가 흡수한 것 외에 어떠한 변화가 있다는 말인가? 정치권은 검증되지 않은 자치계층 단층제 도입으로 국가의 근간이 되는 지방행정을 혼란에 빠뜨리게 해서는 안 된다.

셋째, 일부 정치인은 자치계층을 단층화하고 자치단체인 도를 폐지한 후 인구 50만~100만 정도의 통합시로 개편할 경우, 교육, 경찰 등 대폭적인 지방분권을 해주겠다고 하나 신뢰할 수 없다.

인구 1천만명인 서울시와 경기도, 인구 4백만인 부산시 같은 거대 지방정부에는 우선적으로 이에 걸맞는 중앙권한을 분권해 주지 않고 있는 이상, 이를 믿을 수 없다.

지방행정체제개편을 위해서는 선행돼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외과적 수술보다 내과적 처치인 지방분권 추진이 우선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광역지방정부가 지역경제, 노동, 중소기업 등 국가의 특별지방행정기관과 교육, 경찰 기능은 조속히 이관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방정부가 자립하고 자기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주재원을 보장하여야 한다.

지방교부세, 지방세, 국고보조금 제도 등 지방재정제도를 자주재원 중심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방행정에 대해 주민의 관심은 저절로 높아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방행정체제의 개편은 지역실정에 따라 주민 스스로가 결정하여야 한다. 국회, 중앙정부의 역할은 통합과정에 대한 관리만을 수행하고 전문가 등은 주민에 대해 통합과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만 수행할 필요가 있다. /김성호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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