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이다. 출근하여 자리에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에 그렇게 자주 연락은 못하지만 알고 있는 경기도의 어느 농촌지역 농협의 전무가 느닷없이 찾아 오겠다고 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다소 지나서 도착한 그가 보자마자 하는 첫 마디가 “우리 쌀 좀 팔아 주세요”다. 그러면서 수원에서 몇몇 아는 사람을 만나보고 오느라고 조금 늦었다고 하면서 나를 만난 후 바로 또 서울로 가서 몇 군데를 더 둘러보고 사무실에 들어갈 예정이란다. 요즘은 이렇게 하루종일 여기저기 다니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가면 이미 몸이 파김치가 되어 드러눕기 바쁘단다. 전국적으로도 미질이 꽤 좋기로 명성이 나있는 지역의 쌀이고 값도 내릴만큼 많이 내렸는데도 판매가 영 신통치 않다고 한다. 더구나 불과 두어 달 후면 금년도 쌀을 수매하여야만 하는데 재고가 너무 많이 남아 걱정이 태산같다고 고충을 털어 놓는다.
수심이 가득찬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그를 보면 측은한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 그렇다. 쌀이 잘 안팔린다. 사실 이전에도 어느 농촌지역 농협조합장과 직원이 우리 쌀 좀 팔아달라고 찾아온 적이 종종 있었다. 요즘은 지역농협직원과 만나면 이구동성으로 “쌀 안팔려서 걱정이다”는 소리부터 나온다. 인사가 “쌀 많이 팔았어?”다. 어쩌면 당연한 얘기인지도 몰라도 쌀은 최근 농협직원 최고의 관심사다.
경기도 RPC농협 자료에 따르면 올해 7월 말 현재 원료곡은 작년 7월 말 보다 6.6%가 증가한 반면에 판매량은 23.3%가 감소하여 재고량은 작년의 배가 넘는 143.4%가 증가한 실정이다. 따라서 전년도 판매수준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11월 하순에 가서야 재고소진이 예상되며 금년도 판매실적으로 재고소진을 추정하면 더욱 길어질 것이 분명하다. 급기야 엊그제는 대통령께서 쌀 가공업체를 직접 방문하여 쌀을 원료로 한 각종제품을 소개받고 직접 쌀라면을 먹어보고 쌀 재고 걱정을 하며 쌀 소비진작대책을 지시하였다. 농협중앙회에서도 산지농협 재고과잉벼를 수매하여 어려움을 다소나마 해소 할 계획인 모양이다. 이러한 쌀 걱정은 비단 이 농협직원 혼자 만의 일은 아니다. 그 영향은 고스란히 농민에게 갈 수밖에 없다. 설사 재고를 다 없애놓으면 그 다음엔 수매가 기다린다. 산지농협 직원들에게는 수확에 며칠을 밤낮 없이 먼지속에서 밤잠도 설쳐가며 일해도 쌀만 잘 팔린다면 힘들어도 신바람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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