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북한에 억류돼 있던 여기자 두 명을 미국의 전직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평양으로 날아가 함께 데려오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현실과 견주어 착잡한 생각이 든다.
고의였던 실수였던 북한으로 넘어간 미국 여기자들의 상황은 이래저래 간간히 알려지기도 했지만 현대 아산의 직원으로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던 유모씨를 북한이 억류한 지도 7개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조차 확실한 정보도 없고 거기에 최근 불법 영해 침입이라는 명목으로 나포한 연안호 사건도 어떻게 해결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또 우리에게는 현재 무려 4명의 전직 대통령이 있음에도 어느 누구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갑갑할 뿐이다. 어떠한 배경으로 무슨 복안으로 빌 클린턴이 평양까지 가게 되었는지 또 그로 인해 앞으로 한미 간 북미 간 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인지는 일단 접어두고,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의 퇴임 후 행보를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의 푸틴 전 대통령처럼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도 이제는 수상의 자리를 꿰차고 상대통령 노릇을 하는 보기 민망한 사례도 있지만, 권좌에서 물러나 비정치적인 영역에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한 아름다운 최고 권력자들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우리의 전직 대통령들의 행보를 보면 자리에 있을 때는 물론 자리를 떠나서도 여전히 정치 영역을 맴돌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고 여전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망명, 암살, 형사처벌, 자살로 대변되는 우리들의 전직 대통령들의 행보가 안타깝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어 내는 이산가족 상봉 장면이나, 각종 체육행사에서 남북 선수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우리는 형제, 우리는 하나’를 외치는 장면들을 보면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 같지만, 수시로 돌변해 총구를 맞겨누는 상황이 반복 연출되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북한의 종잡을 수 없는 태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그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노력이 최소한의 방향을 잡고 장기적인 비전과 틀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지금까지 보기에는 우리 정부가 북한에게 끊임없이 쥐락펴락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이 시행한 정책들을 뒤집어 놓으려 하는 시도로 인해 우리 국민이 떠안아야 하는 시행착오와 폐단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다른 영역은 다 차치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정책만큼은 일관성을 기본으로 하였으면 한다.
현재 남북한 관계에는 기본적으로 신뢰가 없다. 신뢰는 ‘믿어 달라’ 하는 말로써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럴싸한 문장으로 포장한 조약이나 선언으로도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분단 된 지 64년이 지났고, 지난 1972년 직접 대화를 시작한 이래 40년 가까이 지났지만 남북 간 불신의 고리는 여전하기만 하다. 갈등하는 개인 간의 신뢰가 끊임없는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형성되기 마련인데, 남북관계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문제는 남북문제에 관여했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지속적으로 일관된 메시지를 주고 그 메시지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인물들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인 사람들이 남북관계의 전면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이벤트성 교류에 급급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상반된 정책을 쏟아내니 신뢰가 구축될 수 없었다.
추석이 오기 전에 유모씨도 연안호 선원들도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빌 클린턴처럼 사심없이 비정치적 행보를 할 전직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음은 안타깝지만, 우리 정부도 북한 정부도 이번만큼은 다른 시각에서 사건을 종결해 남북 국민 모두가 그래도 한민족이라는 공통의 핏줄을 가진 것이 커다란 긍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길 바란다. /공유식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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