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과 문화예술정책

우리나라와 유럽연합(EU)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타결지었다. 내년 중반 이전에 유럽연합 27개국은 우리와 자유롭게 교역하는 경제적 동반자로 새로운 시대를 함께 열어 갈 것이다. 2008년 우리나라의 무역대상국 가운데 유럽연합은 교역규모에서 중국(1천683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984억 달러)로 크다. 그 다음으로 일본(892억 달러), 미국(847억 달러)이다.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한·유럽연합 FTA 협상 타결의 의미는 대단히 크다.

중국이 물량적 경제력으로 세계시장에서 좌충우돌 하는데 비해, EU는 선진 문화력을 바탕으로 시장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번 한EU협상 종결은 2007년 4월 타결이후 2년 넘게 국회 비준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한미 FTA 돌파구 마련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제조업은 물론, 금융, 디자인, 문화 콘텐츠 등에서 세계 최대 강국인 미국, 유럽과 자유무역 협정을 맺은 유일한 아시아 국가가 된다. 한국은 이를 기회로 삼아 중국과 일본을 뛰어 넘어 세계 자유무역의 중심 거점으로 발돋움 할 수도 있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국회 비준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반민주적 행태에 집착하면서, 촛불에 고무 받아 떼법 악습의 함정에 빠진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소위 “그들이 말하는 권력”으로서의 방송과 문화예술을 장악하고, 지지자 결집에 성공한 지난 10년 좌파 문화정책의 수혜자들이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잘못된 좌편향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새 정부에 주었다. 그러나 새 정부가 그 동안 보여 준 것은 한심한 무능력과 철학의 빈곤뿐이었다. 국경 없는 지구촌으로 이미 들어와 있는 세계화·정보화 시대의 진정한 의미를 통찰하는 강력한 국가지도력이 참으로 아쉬운 대목이다.

한EU FTA가 한미 FTA의 실책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반민주적이며 퇴행적인 패거리정치의 포퓰리즘을 경계하고, 21세기 세계질서의 흐름을 주체적으로 헤쳐 나가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문화예술정책 차원에서 개방과 상생의 정신으로 사회를 통합하는 일이다. 지난 10년 좌파 정권의 문화 예술 정책은 진보와 보수, 반미와 친북의 적대적 충돌을 부추겼다. 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소통과 개방성을 병들게 했고, 폐쇄와 배타의 이념적 편향으로 온 나라를 분열 시켰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극도의 사회적 증오와 갈등의 재생산은 단순한 정치 투쟁이나 경제 불균형의 산물이 아니다. 좌편향의 민중, 민족, 통일을 문화 예술적 감성으로 포장하고, 국민을 세뇌한 과거 10년의 문화예술정책이 빚어낸 악성 문화현상이다. 이 악성 문화현상은 법치, 소통, 다수결, 절차와 과정의 준수 같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을 조롱하면서, 민주주의 기본 질서 파괴를 정당화하는 온상이 되어 있다. 이 악성 문화현상을 극복 해야만, 한EU, 한미FTA를 온전한 궤도 위에서 출범,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가 상대해야 할 미국이나 EU의 문화예술정책을 살펴보면 우리가 왜 자유무역협정을 문화예술정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지 한층 분명해진다. 미국의 연방 예술기금(NEA)은 미국 민주주의의 강화를 설립목적으로 하고 있다. 자유, 인권, 법치의 자유민주주의를 건강하게 가꾸는 일이야 말로 미국이 국제 정치, 경제, 문화에서 지도력을 행사하는 힘인 때문이다. EU의 구성원인 문화예술 대국 프랑스는 문화 예술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개방과 상생의 문화예술정책으로 EU의 지도적 국가 위상을 보전하고 있다. EU 여타 국가들도 문화적 개방성과 다양성, 창의성을 문화예술정책 목표로 삼고 있다.

더욱이 EU와 미국은 예술적 수월성과 문화력으로 세계시장을 주도하는 서비스산업 강국이다. 한EU, 한미 FTA는 선진 문화예술정책을 추구 하는 문화예술 강국들과 자유시장의 동반자가 됨을 뜻한다. 대한민국은 이에 상응하는 문화 예술정책의 재정비를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이진배 의정부예술의전당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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