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나라의 앨리스

정원주 협성대학교 아동보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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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붉은 여왕을 만나 그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 정신없이 시골길을 달리는데 아무리 빨리 달려도 제자리 걸음을 할 뿐이었다. 의아히 여기는 앨리스에게 여왕은 설명한다.

“아무리 달려도 주변 세계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제자리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죽을 힘을 다해 뛰어야 하며,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선 지금보다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었을 때 연습벌레인 강수진, 평발이면서도 축구스타인 박지성, 검은케네디라고 불리는 오바마 등의 성공담을 예로 들려주며 이기려면 남보다 많은 눈물(노력)을 흘려야 한다고 다그치면서 어린이들의 손목을 움켜쥐고 함께 달리고 있는 우리네 부모의 모습이 소설 속의 붉은 여왕으로 오버랩되는 것은 상상력이 지나친 것일까.

그러나 그 붉은 여왕에게 ‘붉은 여왕 나라의 앞으로 나가던 속도가 늦춰지거나, 길에 돌이 있었다면 힘껏 계속 달리던 앨리스는 어떻게 되느냐’, ‘속도가 더 빨라져 앨리스의 다리가 꼬여 넘어졌다면 어떻게 되느냐’라고 묻고 싶다.

이 소설 속의 붉은 여왕은 1973년 시카고 대학의 진화학자 밴 베일른이 ‘붉은 여왕 효과(Red Queen Effect)’라는 용어로 등장시켜 진화론뿐만 아니라 경영학 등 경쟁해야 하는 장면을 유용하게 설명하고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대학의 칼 버그스트롬(Carl Bergstrom) 박사와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미카엘 라흐만(Michael Lachmann) 박사팀은 관계에 따라 ‘붉은 여왕 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것을 밝혀내고 공생 관계에서는 오히려 느리게 진화하는 쪽이 우위를 차지한다는 ‘붉은 왕 이론’(The Red King Theory)을 제시했다.

우리는 관계의 맥락 속에서 살고 있기에 ‘붉은 여왕 이론’을 맹신하기보다 앨리스의 체력과 속도(변화)를 잘 감지하고 조언하며 길 위의 돌을 치워줌으로써 손목을 움켜쥐지 않아도 스스로 잘 달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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