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를 받았는가”

사교육의 근절 대책이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 아니 진찰조차 제대로 되지 않으니 제대로 된 처방전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투약은 거부당하고 있다. 마침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교육 담당 장관에게 “공무원이 로비를 받은 것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이에 장관이 “저는 로비를 받지 않았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동문서답(東問西答)인지 선문답(禪問答)인지 갑갑한 대화가 국무회의 시간에 이뤄진 듯하다.

인터넷 백과 사전인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로비는 특정 의사결정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의원이나 정부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활동이라고 한다. 로비스트는 그런 활동을 하는 사람이나 단체이다. 호텔을 자주 이용하던 미국 그란트(Grant)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호텔 로비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던 것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호텔 로비에서 만나서 뒷거래를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낳은 뒤틀린 의사결정의 관행을 빗대는 것이다. 로비가 왜 나쁜가. 그것은 소수 집단이 자신의 특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거래를 통한 은밀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무원에게 이러한 가시적인 로비가 있는가를 질문했다는 것은 보기에 따라 폭발력을 가진 질문이다. 사실 시·군·구 공무원의 부패는 공무원 개인의 윤리에 기인하고 있다. 집행 단계에 있기 때문에 얼마나 규정을 공정하게 집행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개인적 관계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도 공무원이나 특히 국가직 공무원의 경우에는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잠재적인 영향력이 중요하다. 퇴직 후의 자리를 보장받기 위한 배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것이지, 특정 사안을 두고 일대일 거래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잠재적 영향력이 거대한 관료조직에 드리우고 있어 변화를 거부하는 조직의 내생력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정치학의 개념으로 삼자연맹(iron triangle)이 있다. 현대 자본주의 정치 구도에서 국가의 중요한 정책이 입법부, 행정부, 이익집단들이 상호 이익을 주고 받으며 연계되어 이뤄진다는 것이다. 소위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수(保守) 진영의 노련한 전략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부패의 영역으로 거론되는 건축, 세무, 교육 영역의 부패가 이러한 폐쇄적인 먹이사슬의 구조에 있다. 이러한 영역은 서로가 피해자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공범자이고 가해자이다. 그런 맥락에서 보수의 이념을 대변하는 정부에서 로비를 받았느냐 질문이 있었다는 대화가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보수와 진보는 연속선상에 있다. 역사 발전도 보수와 진보의 적절한 긴장 관계를 통해 이뤄져 왔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현대 정치에서 객관적인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특정 집단에게 혜택이 갈 수 밖에 없는 얼개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이익을 무시한 채, 특정 관계로 이어지는 특정 이익만을 위한 정책이 남발될 때, 민심이 이반하게 된다. 그래서 “로비를 받았는가”라는 대통령의 질문은 보수 정권의 정책을 돌아보는 준엄한 자기반성의 목소리로 다가온다.

그 이후 소통을 위해 시장에서 떡볶이를 사는 대통령의 모습이 그러한 연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는 모순이 읽혀진다. 실용이라는 이름의 중립은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기 때문에 외롭다. 보수와 진보는 상행선과 하행선을 달리는 고속도로와 같다. 교통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중간의 안전지대가 두터워야 한다. 문제는 중립이라는 안전지대는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고독한 위치이다. 그럴수록 권력의 정점에 있는 지도자는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소통하면서 균형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벤트나 행사가 아니라 정책으로 말해야 한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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