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냄새가 아쉬운 어린이 글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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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을 하는 관계로 나는 어린이들이 쓴 글을 자주 심사하게 된다. 이번 달에도 두 단체가 공모한 초등 학생들의 글을 심사했다. 그런데 심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날로 어린이다운 글을 찾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즉 어린이의 솔직한 마음이 나타나 있고, 서툴지만 그래서 더욱 친근감을 갖게 하는 글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독창적인 글을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 쓴 사람은 각기 다른데 내용은 비슷한 게 너무도 많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학원이나 그룹지도 같은 데서 가르치는 글짓기 지도에 문제가 있는 듯하다. 글 잘 쓰는 요령만 가르치다 보니 글의 구성이나 전개가 비슷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논술 공부를 한 어린이 가운데는 글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것만을 능사로 아는 어린이도 있다. 이런 글을 대하면 나도 모르게 서글퍼진다.

더 서글픈 게 있다. 어른이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서서 어린이의 글을 고쳐주거나 아예 써주는 행위이다. 이것은 자식 사랑이 아니라 자식의 장래를 망치는 일이다. 자식이 써야 할 글을 왜 부모가 대신 써주는가. 이런 글은 단번에 알 수 있다. 글을 쓴 당사자는 심사위원이 모른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선자의 눈에는 어렵지 않게 띈다.

어린이의 글짓기는 단순한 글쓰기만이 아니다. 글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상상력 교육이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정직한 글을 쓰게 함으로써 교양을 쌓게 하는 인격 교육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부모들이 입상을 염두에 둔 나머지 비교육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서글픔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한다.

어린이의 글을 심사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잘 해야 한다는 것이 그간에 내가 얻은 경험이다. 만약 어른이 쓴 글을 덜컥 입상이라도 시켜 놓으면 그 영향은 생각 외로 크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더욱 팔을 둥둥 걷어 부치고 나설 것이 뻔하고 어린이들은 그런 글을 모범 답안지로 연습할 게 아니겠는가.

최일남의 소설 ‘골방’은 동심을 주제로 하고 있다. 뜻하지 않은 6·25로 시골 초등 학교에도 전쟁이라는 비극이 닥친다. 고향을 버리고 남쪽으로 피난 갔던 아이들이 전쟁이 끝나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이들의 담임 선생님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순수하기만 했던 아이들이 전쟁을 겪는 동안 볼 것, 안 볼 것을 다 본 나머지 순수함을 잃고 어느새 애어른이 돼 있는 것이 아닌가. 이에 실망한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을 향해 지난 날의 순수한 너희들로 돌아가자고 애원을 한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한다는 것을 그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어린이의 냄새가 나는 글이라야 잘 쓴 글이다. 그러자면 어린이 눈으로 보고 느낀 것을 적어야지 어른 흉내를 낸 글은 아무리 세련됐다 하더라도 잘 쓴 글이 아니다. 조금은 서툴고 어색한 구석이 있는 글이 곧 어린이 글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 갓 글을 배워 글짓기를 했는데 어떻게 반들거릴 수가 있겠는가.

글짓기 지도 역시 어린이가 자유롭게 생각하고 표현하게 해주는 게 최상의 교수법이다. 독창적인 글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온다. 당장은 덜 다듬어지고 엉성하다 하더라도 그냥 내버려둬라. 설혹 사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생각이 좀 들어 있다면 또 어떤가. 오히려 독창적인 글은 그런 엉뚱함에서 발효한다. 5월, 저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들처럼 우리의 아이들을 풍요롭게 살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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