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와 경계

김혜정 경희대학교 혜정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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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 예고 없이, 또 전후좌우에서 닥쳐오는 일들을 어떻게 대처하고 해결하는가가 성패의 관건이다. 이러한 원리는 한 나라의 역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각각의 나라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입안하고 실현하는데, 여기에는 힘의 원리가 작동한다. 평화를 원해도 힘이 없으면 지킬 수 없다는 진리를 역사는 보여준다.

이웃나라들과의 역사 분쟁이 잠잠하다. 요즘 중국의 동북공정에 관한 소식도, 일본의 독도 도발도 뜸하다. 어리석은 자는 이런 시기를 평화로 간주하여 안일을 구가하다가 일이 생기면 당황하거나 흥분한다. 하지만 자연이든 사회든 세상은 ‘정중동(靜中動)이고 동중정(動中靜)’이라, 현자는 고요한 바다를 보며 분주하게 풍랑을 대비하고 평화 속에 감추어진 갈등의 씨앗을 예의 주시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고위 관료들은 평화로운 시절에 전쟁을 거론하는 것은 이롭지 않다며 전쟁준비론을 일축했다. 18세기 후반 이덕무는 ‘비왜론(備倭論)’에서 “천하의 사변은 무궁하고 환란은 경홀한 데에서 생기는 것이니 평상시 무사할 때 헤아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임진왜란을 겪어야 했고, 결국에는 국권을 통째로 빼앗겼다.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居安思危)고 했고, 위태로움은 편안함에서 생긴다(危生於安)고 했으니, 두 사건은 모두 편안함에 젖어있었기 때문에 빚어진 역사의 비극인 셈이다.

그러니 별 일 없어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역사 분쟁의 가능성을 거론하고 대책을 숙의해야 할 때다. 이면의 운동은 보지 못하고,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흥분하여 피켓 들고 설치다가 슬그머니 수그러지는 것은 하수의 짓이다. 잠시 평화로운 지금, 우리가 역사 분쟁을 대비하면서 잊지 말아야 할 진리는 각국 영토의 경계는 영원불변하지 않고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오늘 일도 모르는데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은 바보다. 내일 일을 모른다고 하여 오늘만 생각하는 사람은 더 바보다” 조지훈 선생의 말씀이다. 목전의 일에 사로잡혀 100년 뒤 역사를 생각 않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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