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소일하십니까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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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주일에 두 시간씩 수원 중앙도서관에 강의를 하러 나간다. 벌써 다섯 해째 해오는 강의다. 내용은 행복한 글쓰기. 그런데 50세 이상의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좀 특이하다.

이 강좌는 날로 늘어나는 고령 인구를 위해 수원시가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그런 만큼 강좌에 참석하는 분들의 면면도 다 다르다. 개인간의 연령 차이도 많이 날뿐더러 살아온 삶의 형태 역시 각양각색이다. 여기에 글쓰기 수준은 더더욱 차이가 난다. 조금만 노력하면 머잖아 작가로 입문할 만큼의 실력을 지닌 분이 있는가 하면, 글과는 애당초 거리가 먼 분도 있다. 굳이 공통점을 찾는다면 다들 글을 가까이하려 하고, 함께 공부하는 그 시간을 무척 행복해 한다는 것이다.

두 시간 중 첫 시간은 시와 수필을 감상하는 시간이다. 이를 위해 나는 시 세 편, 수필이나 에세이 한두 편을 발췌하여 그날의 교재로 삼는다. 시는 되도록 이해하기 쉬운 작품으로 고른다. 수필이나 에세이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교재로 삼을 작품을 고르는 데 얼마쯤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고민이야말로 내겐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한 시간인지 모른다. 어느 날엔 이 책 저 책을 뒤적이고, 또 어느 날엔 서점의 신간 코너를 찾아 새 잡지를 훑어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둘째 시간은 수강생들의 작품발표 시간이다. 일주일 동안 공들여 쓴 글을 가지고 나와서 소감을 듣고 평을 받는다. 그렇다고 다 글을 써오는 건 아니다. 매주 글을 써오는 분이 있는가 하면, 글은 써오지 않더라도 남의 글을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사람도 있다. 한마디로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 글을 커피나 과자쯤으로 즐기는 시간이라 하겠다. 이 강좌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운영하는데, 끝날 때쯤이면 함께 공부한 분들의 작품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펴내는 기쁨도 갖고 있다.

나는 나이 든 분들에게 글쓰기를 권하고 싶다. 노후의 벗으로 글쓰기만 한 게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는 그 순간부터 삶이 새롭게 보이고 설렌다. 같은 사물을 대해도 그냥 건성으로 보아지지 않고 마음으로 보게 된다. 이것만 가지고도 뇌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가 있다.

글쓰기의 좋은 점은 더 있다. 혼자라도 얼마든지 가지고 놀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고령자들에게 가장 좋은 놀이이자 장난감이다. 게다가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이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이 아니고 무엇인가.

젊었을 때와 달리 나이가 들면 하루 해를 보낸다는 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자칫 온종일 멀뚱히 해바라기나 하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온 인사가 ‘요즘엔 무엇으로 소일하십니까?’가 아닐까 싶다. 길고 긴 하루 해를 무엇을 하며 보내느냐는 인사말이다.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닥치는 걱정거리다.

이제 갓 50을 넘긴 분에서부터 80세가 넘은 분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연령층의 분들과 함께 글공부를 하면서 내가 늘 고맙게 여기는 게 있다. 글쓰기는 우리네 삶을 젊고 싱싱하게 해주는 또 하나의 헬스장이다. 펜을 쥐고 앉아 있으면 혼자 있어도 쓸쓸하지 않고 적막하지 않다. 오히려 혼자라는 것이 글을 쓰는 데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조건이 되기도 한다.

적막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황혼. 하지만 글을 곁에 두고 살면 이 쓸쓸한 황혼도 낭만적인 ‘노을’로 색칠할 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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