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설파했다. 인간은 언어를 넘어서 세계를 이해하거나 파악할 수 없다. 세계는 오직 언어 안에서만 존재한다. 더 많은 어휘를 가졌음은 더 많은 세계를 지녔음을 의미한다. 한 사회에서 사용되는 과학기술어, 문화예술어, 감각어, 형이상학어의 수량은 그 사회가 도달한 학문과 문화 수준의 지표가 된다. 이는 개인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니, 언어는 풍요의 또 다른 척도가 된다. 언어는 인간의 정신이 객관화된 상징 체계이다.
언어와 비슷한 상징 체계로 지도가 있다. 우리는 지도가 제시하는 만큼만 세상을 알 수 있다. 네비게이션이 없으면 낯선 곳을 찾아가기 어렵듯, 지도가 아니면 감각적 인식 밖의 세계를 알 길이 없다. 지도는 그 사회가 도달한 경험, 지식, 상상력의 총화이다. 지도가 제시하는 세계의 크기는 그 사회가 지닌 세계 인식의 크기와 비례한다. 지도의 다양성과 정밀도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지닌 세계관의 다양성과 세계 이해의 정밀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지도는 한 사회가 성취한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가늠자인 셈이다.
중국 고대의 법제서인 ‘주례(周禮)’는 “직방씨(職方氏)는 천하의 지도를 손에 쥐어 천하의 지리를 장악한다”고 했다. 직방씨란 지방 행정과 외교 업무를 맡았던 관직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는 툴툴대는 아우들을 달래가며 삼고초려로 제갈량을 찾아간다. 유비의 성의와 진심을 확인한 제갈량은 서천(西川) 54고을의 지도를 벽 위에 걸고 천하삼분계를 설명했다. 이 지도의 의미를 읽지 못하면 제갈량도 이해할 수 없다. 18세기 실학자 성호 이익은, 선비라면 지도를 그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세상을 지배한 자들은 먼저 지도를 장악했다. 정확한 지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담고 있는 세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위난의 시절 우리 사회에 묻는다. “우리 지도자들의 집무실에는 다양한 지도가 걸려 있는가.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지도 연구자들이 양성되고 있는가. 다양한 분야의 성과들이 지도로 표현되고 있는가. 우리는 미래의 꿈과 전망을 담은 지도를 그리고 있는가” 대답 여하에 따라 우리 미래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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