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은 삶과 자연의 대명사

조은기 국립농업과학원 원장
기자페이지

경기가 좋지 않을 때는 관객들도 따뜻한 감성 영화를 찾는다. 최근 독립영화 개봉작 중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워낭소리’의 성공 요인들 가운데 하나도 바로 잔잔한 감동에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영문 제목 ‘Old Partner’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북 봉화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최 노인과 40살이 넘은 늙은 소의 관계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영화는 평생을 함께한 오랜 동지 ‘소’를 떠나보내는 최 노인의 안타까움이 날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은 최 노인을 통해 삶과 자연을 대하는 농부들의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최 노인은 농약도, 변변한 기계도 없이 마디가 굵어진 손과 불편한 다리에 의지한 채 모를 심고 잡초를 벤다. 평생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바람에 할머니로부터 늙은 소보다 못한 자신의 팔자타령을 연신 들어야 하지만 최 노인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도 새벽녘에 밭에 나가야 맘이 편하다는 최 노인을 두고 남의 집 살이 하던 버릇이 남아 그렇다고 하지만 단지 그 이유뿐일까. 그는 사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농작물과 이를 키워내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안식을 삼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은 생색냄이 없이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요란하지 않게 결과물을 토해낸다. 이러한 기쁨은 최 노인과 같이 옆으로 눈길 돌리는 일 없이 묵묵히 자연을 들여다 봐주는 농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행운이다. 농사를 짓는 일련의 과정은 이렇게 ‘기다림’이라는 겸손을 말없이 가르쳐 준다. 그래서 최 노인은 늙은 소를 헐값에 파는 대신 죽음의 순간에 함께 눈물을 흘려줬는지도 모른다.

며칠 후면 ‘춘분’이다. 마냥 봄 기분을 만끽하기에는 추위도 경기도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겨우내 얼었던 땅이 풀리면서 농부들의 손길이 가장 먼저 분주해 진다. 이렇게 그들은 오랜 경제 불황으로 움츠러든 우리들에게 이제는 새 봄을 맞이할 때라고 말없는 교훈을 전하고 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