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별 희한한 일도 다 생긴다. 여자가 남 앞에 팔뚝만 내놓아도 흉이 되던 시절이 그리 오래 전이 아닌데, 요즘엔 가슴이 훤하게 드러나고 허벅지 위까지 스커트가 올라가도 흉은 커녕 당연한 일처럼 여긴다. 개가 승용차를 타고 다니고, 동물만 전문으로 진료하는 병원도 생겼다. 남을 잘 웃기면 방송에도 나가고 돈방석을 깔고 앉는다. 노래 한 곡만 떴다 하면 나이에 상관없이 재벌이 안 부럽다.
반면 한 세상 떵떵거리며 기세 좋게 활개를 치던 존재들이 하루아침에 자리를 빼앗기고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생긴다. 아버지들의 몰락도 그 ‘별 희한한’ 일 가운데 하나다. 사실 그동안 아버지들의 존재는 얼마나 광채가 번쩍였던가.
한 집안을 호령하고 휘두른 그 세월이야말로 아버지들의 전성기였다. 고주망태에다가 폭군이 되어도 식솔들이 대놓고 뭐라 하지 못했고, 웬만한 위선과 실수에도 모른 척 눈감아 준 존재가 아버지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상황이 확 달라졌다. 이렇게 행세를 하다가는 자식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평생 고분고분하던 양 같은 아내한테서도 버림당하기 딱 십상이다. 세상이 바뀐 것이다. 아버지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별 희한한 세상이 온 것이다.
요즘 아버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측은해 보인다. 다들 날개 부러진 새 같다. 큰 소리는커녕 오히려 가족들의 눈치를 보는 데 익숙해졌다. 텔레비전의 채널 선택 권한도 아내에게 넘겨준지 오래고, 권세와 위엄의 상징인 기침소리를 낸지가 언제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끼리 만나면 신세타령을 늘어놓는 데 하루해가 모자란다.
그렇다고 아버지들이 죄인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 시대까지 오는데 아버지들이 흘린 땀과 수고는 박수를 받아야 마땅하다. 설혹 세상이 바뀌어 남성들의 시대가 쇠퇴기를 맞고, 여성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른다고 해서 아버지들의 자리가 필요 없어진 것은 절대로 아니다. 또 극심한 불경기로 실직과 구조조정 등 아버지들의 초상이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졌다 하더라도 아버지들이 지금처럼 기를 못 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최고의 극작가로 평가받는 아서 밀러의 대표작 ‘세일즈맨의 죽음’은 바로 아버지의 꿈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 윌리 로우맨은 예순세살 된 세일즈맨이다. 그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돈을 모아 자기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윌리의 꿈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와 함께 가정에서의 자기 입지도 점점 좁아져간다. 윌리는 결국 두 아들에게 보험금이라도 남기기 위해 자동차를 폭주해 자살을 택한다. 이에 앞서 아내 린다는 두 아들을 불러 앉혀놓고 이렇게 말한다. “네 아버지가 대단히 훌륭하다는 것은 아니야. 큰 돈을 번 일도 없고, 신문에 이름이 난 일도 없어. 하지만 네 아버지도 인간이란다. 꿈을 가진 인간이야.”
‘세일즈맨의 죽음’은 산업화된 현대문명 속에서 하나의 소모품처럼 버려지는 아버지들의 삶을 그려 보이고 있다. 초라해진 오늘의 아버지들의 모습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아버지들이여, 힘을 내자. 이 거칠고 험한 세상을 떠밀고 나갈 마차 역은 아무래도 아버지들의 몫이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그 저력을 다시 한 번 보여주자. 설혹 이 시대가 여성적 섬세함과 감성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소 같은 아버지들도 필요하다. 차제에 폭군의 이미지도 벗어 던지고, 위선의 상징처럼 되었던 남성상도 씻어버리고 새로운 모습의 아버지상을 보여주자. 아, 이 땅의 수고 많은 아버지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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