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맛이 없다!

김동훈 건축사·(주)진우종합건축사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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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대길! 봄이 되면 밥맛을 잃었던 사람도 밥맛이 돌아온다는 계절이다. 봄이 가져다준 선물! 냉이를 비롯한 각종 나물은 그 향기만으로도 인간의 입맛을 충족하기 부족함이 없다. 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춘삼월이 되면 우주 만물이 생동하고 온 세상은 파릇파릇 녹색 왕국을 만들기 위하여 모두들 노력하는 계절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나무들도 자기 자신의 영양을 섭취, 종족 번식 및 생존 경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낮에는 광합성을 하기 위하여 넓은 잎을 가진 나무나 가느다란 잎을 가진 나무나 너 나 할 것 없이 최대한 팔을 벌려 태양빛을 받아 들인다. 이런 과정에 그들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산소를 배출한다. 우리가 산림녹화를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무로 인하여 자연환경이 보존되고 생태계 유지에도 절대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산소는 인간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에다 나무를 심고 도심 공원을 조성하여 숲을 만들자고 할 때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식물도 이렇듯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알고 인간과 공생하기를 원한다. 나무가 산소를 배출한 다해도 무조건 여기저기 아무 나무나 심지는 않는다. 나무 종류에 따라서 적당한 장소가 따로 있다. 형태가 아름답거나 향기로운 나무는 인간 곁에 두지만 커다랗고 재질이 단단한 나무는 재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주로 산속에 심는다. 인간 곁에 둔 나무는 항상 관리를 해야 한다. 자기 나름대로 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원하는 대로 커야 한다. 만약 그렇게 크지 못하면 가차 없이 베어버린다. 하지만 산속에 심겨진 나무는 짧게는 수십 년에서 수백 년 동안 자기 스스로의 생존 방법을 가지고 큰다. 이 과정을 적응하지 못하는 나무는 물론 생존하지 못한다. 요즘 밥맛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봄이 되었는데도 말이다.

필자는 가끔 세상 살아가는 일로 머리가 복잡하면 시골에 계신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고 한다. 채 30분도 안 돼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큰아들 온다는 소리에 자식이 좋아하는 검정콩을 넣은 밥을 새로 하시고 당신이 손수 담그신 된장에 냉이를 듬뿍 넣어 된장찌개를 끓이신다. 철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비듬나물과 오이소박이는 물론 땅속 항아리에 묻은 김장김치 역시 기본이다.

한참을 정신없이 먹다 보면 맞은편에 앉으셔서 나를 쳐다보시는 어머님의 눈과 마주치게 된다. “요즘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김 교수는 어떤가?” 한 번도 나에게 너! 야! 소리 한 번 안하시는 분이시다. 고작해야 “애비야! 힘들다고 어깨 축 늘어트리고 다니지 마라 너를 바라보는 직원이 한 둘이냐? 네가 힘들다고 하면 직원들은 더 힘들어 할 것이다.” 기왕에 온 김에 내 방에 가서 눈좀 붙이고 가라신다. 사실 나는 가끔 어머님 방에서 한숨자고 가는 적이 많다. 그러면 기분도 좋아지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것 같다. 어머니는 나에게 산소와 같은 분이시다. 내가 이야기를 안 드려도 어머니는 내가 왜 왔는지 다 아신다. 그분은 산삼과도 같은 산소를 나에게 주신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좋다. 생각 같아선 수백 년 모시고 싶다. 세상에 이렇게 산소와 같은 존재가 참 많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다. 도대체 누구를 믿고 의지해야 할지 모르겠다. 산소는 그만두고 독가스나 내 뿜지 않았으면,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자신의 주장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혹 귀가 먹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보청기라도 하나 사주어야 하나? 밥맛이 없다.

/김동훈 건축사·(주)진우종합건축사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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