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어린이들은 행복할까? 건강할까? 의지력은 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나약하고 불쌍하다. 야망도 의지도 지구력도 없다. 모두가 부모의 그늘 아래서 키워지는 화초라고 생각된다. 온실 속의 화초는 아름답고 예쁘긴 하나 강건하질 못하다.
얼마 전 매스컴에서 국군 장병들이 군생활과 훈련에 적응하지 못해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몇 차례 읽었다. 참으로 딱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옛말에 ‘전쟁에서 죽기를 각오하면 살고, 살기를 원한다면 죽는다’(死卽生 生卽死)는 말이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군부대도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인데 이해가 안 된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 볼 수 있을까.
모래사막에서의 풀 한 포기와, 백두산 꼭대기에서의 나무 한 그루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사막의 풀은 물이 없어 뿌리를 깊게 내리고, 백두산의 나무는 세찬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으려고 몸을 낮추는 삶으로, 모두가 자기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을 찾아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 온실 속의 화초는 비바람을 모르고 자란다. 야생화가 온실 속에서는 살아갈 수 있지만, 온실화가 밖에 나가면 생존할 수가 없다. 모진 비바람과 추위, 목마름과 배고픔에 견딜 수가 있어야 한다.
하물며 인간사 동식물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요즘의 어린이들은 너무나 나약하고 의지력과 지구력이 부족하다. 심지어 학교에서 빗자루 청소도 못하고, 100m의 등굣길도 차를 타고 가야한다. 500m의 오래달리기를 하면 쓰러져 체력검사도 없어졌다. 따라서 체력은 점점 나약해져 비만아가 되고, 숙제도 부모가 해줘야 한다니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 아닌가. 자주력도 책임감도 없다. 부모가 없는 먼 훗날은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다.
모두가 어른들의 책임이다. 너무나도 크고 두터운 부모의 보호막을 걷어 치워야 한다. 홀로서기를 가르쳐야 한다. 독수리는 새끼를 낳아 낭떠러지에 던져서 혼자의 힘으로 어미한테 올라오는 새끼만을 키운다는 교육방법이 생각난다. 그래서 새 중의 새가 아니던가.
/이세재 평택청북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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