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과의사로서의 내 하루는 외래진료와 수술로 채워진다. 흔히 수술이 외래진료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내게는 외래진료가 수술보다 어렵다. 수술은 내 노력과 준비에 따라 해결될 수 있지만, 외래진료의 경우 그 해결책이 환자 본인에게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퇴행성 관절염 초기로 진단된 50대 환자의 경우 “퇴행성 관절염 초기상태입니다. 노화가 원인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지만 다행히 심하지 않으시니 이제부터 관절 관리 잘하시고, 증상이 심할 때만 병원에서 치료받으시면 됩니다”라는 취지의 설명을 한다. 이에 대해 환자들은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그래요? 심각한 병은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다행입니다. 이제부터 관리만 잘하면 된다는 말이지요?”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다. 이런 환자들은 가끔씩 불편함을 겪기는 하지만 삶을 전체적으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두 번째는 “퇴행성 관절염은 한번 생기면 낫지 않는다는데, 아직 젊은데 벌써 퇴행성 관절염이 생겼네, 큰일 났네”라는 반응을 보이는 경우다. 이 환자들은 불안한 마음에서 여러 병원을 방문하면서 온갖 치료법을 시도해보지만, 결국은 특별한 효과 없이 큰 고통에 시달린다.
무릎 상태는 비슷하지만, 현재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에 미치는 영향은 현저히 다르다. 노화에 의한 신체증상으로 인해 본인의 건강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고, 남아있는 세월의 소중함을 깨달아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이는 작은 버림으로 더 큰 것을 얻는 경지일 것이다.
작은 것을 버림으로써 큰 것을 얻는 경우는 환자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처음 진료를 시작할 때는 모든 환자에게 의학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의학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는 환자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환자가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문제와 더불어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선배가 해준 충고, “최선의 노력에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는 환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환자를 위한 좀 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다” 진료실에서 내 스스로 자주 일깨우는 말이다. 의학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을 때, 내가 진실로 환자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을 환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오히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김태균 분당서울대병원 정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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