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시대일수록 백년대계를

성근제 인하大 연구교수·중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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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언제나 해가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덕담 삼아 다가올 새해의 안녕을 기원하지만, 그 의례적인 덕담마저도 올해는 더욱 공허하게 느껴진다. 2009년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예비된 첫 번째 단어는 여전히 ‘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우리 앞에 놓인 ‘위기’의 세부 목록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위기는 국내외적인 차원을 망라하여 가히 ‘총체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이를 키우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하건대, ‘위기’든 ‘희망’이든 무릇 미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나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시간들이었다. 물론 이것은 필자만이 아니라, 모든 어미와 아비들의 자연스럽고, 공통된 반응 방식이 아닐까 싶다. 미래의 시간들은 물론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의 아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것임을 아비된 자로서 부정할 도리가 없는 소치이다. 작금의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도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이 ‘위기’에 대한 대응의 결과로 나타나게 될 ‘위기 이후’의 사회가 우리 아이들의 장래에 어떤 삶의 조건들을 마련해 주게 될 것이냐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위기에 대한 대응과 처방이 철저히 우리 아이들의 장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아마도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근시안적인 처방이 제시될 리는 없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근본적이지 못한 단기적 처방은 다만 파국의 도래를 잠시 연장시킬 수 있을 뿐, 오히려 그 파괴력은 몇 곱절로 키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라는 점은 둘째로 치더라도, 우선 ‘아비답지 못한’ 일임에 틀림없다.

내년 초 우리 사회의 경제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대통령이 앞장서 경고를 하고 나선다. 전세계 경제가 말이 아닌 상황이니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리는 없겠다. 다만, 이 정부가 틈만 나면 강조해대는 것처럼 작금의 위기가 전세계 경제의 근본적 문제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면, 그에 대한 대응 역시 정권의 안위나 치적의 차원을 한참 넘어선 근본적인 차원에서 마련되지 않으면 안된다. 당장의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전국토를 망치 소리 가득한 공사판으로 만들고, 이 나라 4대 하천에 콘크리트를 14조원어치나 퍼붓겠다는 발상을 가지고 대처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런 식의 발상으로는 행여 경제 위기를 잠시 모면한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 미래는 없다. 이런 콘크리트 돌격대 식의 낙후한 ‘발상’ 자체가 우리 사회 위기 대응 능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진짜 위기의 징후이기 때문이다.

상투적인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위기의 시대일수록 백년대계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다음 세대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일 말이다.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과감하고 근본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시쳇말로 선진국 수준으로 돈을 쏟아 부어야 한다. 하여 기축년 새해에는 우리 사회에 이런 흐뭇한 변화들이 일어나길 덕담 삼아 기원한다. 멀쩡한 강줄기에 쏟아 부을 14조원어치의 콘크리트가 우리 아이들의 교실을 늘리고, 도서관을 신축하기 위한 거푸집에 쏟아 부어지기를, 그리고 그 도서관을 가득 채울 더 많은 양서로 마술처럼 변화되기를….

/성근제 인하大 연구교수·중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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