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에 가면 뒷산에서 가끔 나타난다는 늑대나 여우보다도 더 무서운 게 뒷간에 가는 일이었다. 뒷간이란 곳이 하필이면 집 밖 외진 구석에 있는 탓도 있었지만, 문짝을 열고 들어가면 어둠침침한 공간에 거미줄이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을 뿐 아니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게 꼭 낭떠러지에 매달린 기분이었다. 낮은 그래도 괜찮았다. 어쩌다 과식이라도 하여 밤똥을 누어야 할 일이 생기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어느 날밤엔 뒷간에 가기가 겁이 나서 배를 움켜쥐고 아침이 올 때까지 참기도 했다. 그때의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온 몸에서 식은땀이 난다.
시골만 그런 게 아니었다. 학교 변소도 크게 나을 게 없었다. 왜 그리 똥독을 큰 것으로 묻었는지, 여기도 낭떠러지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문짝들이 내는 소리가 꼭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귀신 소리로 들려서 다들 변소 가기를 꺼렸다. 그렇다고 각 가정은 사정이 나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문만 열면 냄새가 진동했던 변소는 파리들의 운동장이나 다름없었다. 윙윙 대며 날아다니는 소리가 방안까지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곳을 찾기가 오히려 어렵게 되었다. 어딜 가나 번듯한 시설에 깨끗한 환경을 지닌 화장실이다. 특히 내가 사는 수원의 공중 화장실은 안방 못지않은 아름다운 시설을 자랑한다. 세계문화 유산을 가진 도시답게 화장실 또한 세계적이다. 날로 수원을 찾는 외국의 관광객이 느는 데엔 청결한 화장실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된다.
화장실 얘기를 하다 보니 몇 해 전에 다녀온 중국 여행이 생각난다. 더럽다더럽다 해도 중국의 공중 화장실만큼 더러운 곳이 있을까. 우리 일행은 너나 할 것없이 여행 첫날부터 기분을 잡쳐야 했다. 일반 음식점의 화장실이야 그렇다 치고 세계 제일의 관광지라는 곳의 공중 화장실이 그렇게 더러울 줄이야! 신선이 놀다 갔을 만큼 빼어난 경치를 보고 나서도 우린 불결한 화장실 때문에 다들 얼굴을 펼 수가 없었다. 소위 국제 관광지의 화장실이란 게 우리 나라의 옛날 뒷간보다도 못한 곳이었으니 말이다.
중국의 공중 화장실에 비하면 우리 나라의 공중 화장실은 양반도 상양반에 해당한다. 특히 내가 사는 수원의 공중 화장실은 세계 어디에다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그러다 보니 수원사람으로서의 긍지도 함께 지니고 있다.
언젠가 외국에 사는 친구가 고국을 찾아 왔기에 이야기를 할 겸해서 수원 성곽을 따라 걸은 적이 있었다. 친구는 잘 정비된 성곽을 보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이렇게 완벽한 모습으로 옛모습을 복원한 건 수원의 자랑뿐 아니라 우리 나라의 자랑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화장실에 대한 감탄도 빼놓지 않았다. 세계 어딜 가도 이 정도로 깨끗한 화장실을 만나기 쉽지 않단다. 나는 어깨가 으쓱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수원에 산다는 그 사실이 새삼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이제 화장실은 단순히 본능적인 것을 해결하는 장소에서 생활의 하나로, 나아가 문화로 자리 매김되었다. 화장실이 카페처럼 만남의 약속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화장실에 온몸을 바친 한 사람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이름은 ‘미스터 토일렛’으로 불리는 심재덕! 그는 아름다운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일하다가 암까지 얻었다. 하지만 암조차도 그 분의 열정만은 꺾지 못했다. 그는 투병 속에서도 낙후된 세계 각국의 공중 화장실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 새해에는 그 분이 병마를 훌훌 털고 일어나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기를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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