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

이 구 남 道교육청 영재담당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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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앞마당에는 겨울을 알리기엔 아직 이른 가을비가 마르지 않은 채 은빛처럼 반짝였다. 스며들지 않은 촉촉한 마당을 밟으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는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펼쳤다. 낮게 드리워진 회색 빛 먹구름 사이로 하얀 토끼털 모양의 구름이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셨다. 오늘은 하늘도 두 가지 마음을 선사하고 있었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천부경의 첫 구절과 마지막 글귀를 생각해 본다. 천부경의 깊은 뜻을 어찌 나같은 범인이 근접하랴마는 나의 지적 범위만큼 해석을 해보았다. ‘하나가 시작했지만 하나는 없고 하나가 끝났지만 끝난 하나도 없다’ 인간의 욕심은 끝내 허망한 꿈속에 있지만 사는 동안 허망한 꿈을 잊고 살게 된다. 인간의 욕구는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끝없는 인간의 관계는 사랑과 증오, 비전과 패배를 반복하게 된다. 그래서 천부경은 말한다.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 하나가 시작했지만 하나는 없고 하나가 끝났지만 끝난 하나도 없다. 무자년(戊子年) 쥐띠해의 달력도 한 장이 남았다.

올 초 사람들은 풍요와 희망, 기회를 상징하는 쥐띠 해를 맞아 재물, 다산, 풍요를 기원했다. 개개인의 처해있는 위치에 따라 가정의 복은 물론 사회의 복, 국가의 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새로운 정부의 탄생은 모두에게 풍요를 약속해 주는 듯 출발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비행의 임무를 완수한 이소연 박사나 ‘마린보이’ 박태환 수영선수,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은 한국의 브랜드와 가능성을 세계로 알려주었다. 세계시니어피겨그랑프리에서 우승한 김연아는 국민의 희망과 경기교육의 자존심을 높였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었을까?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세계 경제 불황은 일그러진 장밋빛 청사진으로 전락했고, 세계 각국은 이기적 이해관계로 전쟁, 테러, 살상 등 끝이 보이지 않는 국제적 불안에 노출되었다. 결국 희망과 절망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제 한 장 남은 무자년의 달력은 ‘일시무시일 일종무종일(一始無始一 一終無終一)’라는 지혜를 말해주고 있다.

이 구 남 道교육청 영재담당장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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