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벗은 나무들을 바라보며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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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추워지면서 거리란 거리는 온통 낙엽 천지로 변했다. 야구 글러브만 한 낙엽에서부터 고양이 발바닥만 한 낙엽까지 낙엽의 모양새도 각양각색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저렇게 많은 낙엽이 어디서 한꺼번에 날아왔을까 싶다.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수긍이 갔다. 우리 주변에는 나무도 참 많았구나. 그리고 나무들에 매달려 있던 잎사귀도 참 엄청나게 많았구나. 그러고 보니 뙤약볕을 피해 하루에도 몇 차례씩 푸른 그늘에 몸을 식혔던 지난 여름날 생각이 났다. 돈 한 푼 안 받고도 서늘한 그늘을 내주었던 고마운 나무들. 사막 같은 도시를 그나마 숨쉬게 해주고 살아있게 해준 고마운 나무들. 그 나무들이 오늘은 옷을 벗는 것이다. 아니 이젠 거의 옷을 벗고 알몸이 되었다.

옷 벗은 나무들을 바라보는 일은 또 하나의 볼거리이다. 얼마나 훤칠하고 미끈한지. 마치 팔등신 미녀들의 누드 쇼를 보는 것 같다. 그것은 치장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또 하나의 예술적 쇼다.

늦가을은 이 지상 최대의 쇼를 관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관람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완전 공짜 쇼다. 나는 늦가을이면 나무들이 펼치는 이 장엄한 퍼레이드에 넋을 빼앗기고 만다. 얼마나 아름다우냐. 거기에다 얼마나 청결하냐. 그 어느 공연단체가 이런 아름다운 무대를 펼칠 수가 있을까. 지닌 것을 하나씩 내주면서도 초라하기는커녕 그윽함을 넘어 성스럽기까지 한 이런 볼거리는 자연이 아니고서는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이효석의 ‘낙엽을 태우면서’ 란 수필을 배웠다. 안경만 씌우면 영락없는 천재작가 이상을 빼닮은 국어 선생님은 낙엽을 태울 때 커피 냄새가 났다는 작가의 글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나더니 갑자기 우리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너희들 중 낙엽에 대해 생각해 본 녀석 있냐?”

갑작스런 질문에 우린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는데, 아무 대답이 없자 선생님은 몹시 실망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다들 머리통만 컸지 속은 텅 비었구나. 잘 들어라. 우리네 인생도 한 장의 낙엽과 다를 게 없다. 시간이 다하면 바람에 날리어 저렇게 뒹굴어야 하는 것! 하지만 얼마나 대견하냐. 여 름 내내 사람들에게 푸른 그늘을 만들어 주었지 않냐. 선생님은 말이다, 낙엽을 보면 존경 스러워진다.”

낙엽을 존경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우린 철도 없이 낄낄댔고, 그것이 선생님을 더욱 슬프게 해드렸던 저 국어 시간. 벌써 50년 저쪽의 이야기다.

늦가을은 나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계절. 나뭇잎을 죄다 떨구고 난 뒤에야 나무는 비로소 자신의 형체를 드러낸다. 어디 나무뿐인가. 사람도 나무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늦가을이 돼 봐야 그 사람의 살아온 길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아,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았구나.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들에게 비쳐질까. 갑자기 부끄러워진다. 그럴 수밖에. 내가 생각해도 뭐 하나 제대로 이뤄 놓은 게 없다. 내 딴에는 이날 이때까지 동화를 쓴다고 매달렸지만 과연 이다음에 몇 작품이나 남을지.

“올해도 다 갔네요.”

아내가 아침 신문과 따끈한 차 한 잔을 놓고 가며 한마디한다. 아, 그러고 보니 어느새 12월이다.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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